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두 번째 구조 개편인 ‘여수 1호 프로젝트’가 정부 승인을 받고 본격 추진된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 사태로 한동안 주춤했던 구조 개편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산업통상부는 여천 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4개사가 제출한 여수 산업단지 석유화학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대산 1호 사업재편 프로젝트(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에 이은 두 번째 사업재편 승인이다.
이번 재편안은 여천NCC 1∼3공장 중 이미 가동이 중단된 3공장 외에 2공장을 추가 폐쇄하고 남은 1공장을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과 합쳐 통합법인을 설립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수 2·3공장의 연간 에틸렌 생산량 총합은 139만톤이었다.
재편이 이뤄지면 참여기업인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 DL케미칼이 3분의 1씩 통합법인 지분을 갖고 연간 약 140만톤의 생산 능력을 줄일 수 있다.
여천NCC 지분 50%씩을 보유한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각각 272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여천NCC의 기존 부채를 상환하고 인프라 구축, 고부가 전환 등 사업재편 이행을 위해 2532억원을 투자하는 등 총 8000억원 규모의 자구노력을 이행한다.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 부문에서는 각 사의 경쟁력 있는 주력 사업을 신설법인에 통합한다. DL케미칼의 PE(폴리에틸렌), 한화솔루션의 PE·석유수지, 롯데케미칼의 기초소재 부문 등이 대상이다.
통합법인은 이를 통해 의료용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자동차·전선용 기능성POE(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한다. 이를 통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고 중장기적인 시장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의 이 같은 자구책 마련에 정부는 7000억원 이상의 지원 패키지로 연착륙을 돕는다. 우선 65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에 나선다. 설비통합과 고부가 전환을 위한 45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채권금융기관을 통해 공급한다.
아울러 사업재편 기간인 2029년 말까지 협약 채무에 대해서는 상환을 유예하고 기존 금융 조건을 유지한다. 무역보험공사는 수입보험료 최대 30% 할인과 보증한도 최대 2배 우대 등 2000억원 규모의 수입보험을 지원한다. 또한 기업 분할·합병 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취득세 및 등록면허세를 75∼100% 감면하고, 설비가동 중단 및 자산매각 등과 관련된 과세 이연 기간 확대 등 법인세 부담을 완화해준다.
원가 절감 및 제도 합리화를 통한 기업 애로 해소도 추진된다. 올해까지 수입 나프타 및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무관세를 적용해 약 156억원의 원가 절감을 돕는다. 또한 사업재편 기간 열 공급구역 중복금지 규정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 덧붙여 중장기 필수 유망 연구개발(R&D) 3개 과제에 올해부터 248억원을 지원하고, 조세특례제한법상 신성장·원천기술 지정을 통해 기업들의 고부가·친환경 분야 신규 투자를 유도할 방침이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이번 여수 1호 프로젝트의 승인은 국내 최대 화학산단인 여수에서도 사업재편이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며, 선제적·자율적 구조개편이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은 산업정책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내 석유화학의 핵심 거점 중 하나인 울산 산단은 여전히 구체적인 재편안을 내놓지 못했다. 울산은 최근 실적 반등으로 인해 기업들의 생산능력 감축 유인이 약해진 데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맞물렸다. 약 9조원이 투입된 샤힌 프로젝트는 최근 기계적 완공을 마치고 올해 말까지 시운전을 완료한 후 내년 본격 가동을 앞뒀다.
샤힌 프로젝트의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은 180만 톤으로, 풀가동 시 정부의 NCC 감축 목표인 최대 370만톤의 절반에 해당하는 새 에틸렌이 양산되는 셈이다.
정부는 울산 산단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문 차관은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임승차 없이 모든 산단이 참여하는 사업재편이 필요하다”며 “대산과 여수에 이어 울산 지역 사업재편 논의도 신속하게 추진해 우리 석유화학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