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극심한 수급불균형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주요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공격적인 캐파(생산능력) 확대에 나섰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으로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움직임엔 경쟁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다.
12일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가 전년(7956억 달러) 대비 90% 증가한 1조5112억달러(약 2279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메모리 시장은 올해 8039억달러(1212조원)로 전년 대비 무려 25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산으로 메모리 시장이 전례 없는 초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데이터센터향 반도체 칩의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영향으로 D램과 낸드 가격은 올해 1분기 전 분기 대비 80∼85%, 2분기 50% 상승했다.
메모리 1위인 삼성전자는 초격차 유지를 위해 신규 팹 건설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건설 중인 평택캠퍼스 P5 1·2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등에 2030조원을 투자한다. 용인클러스터 첫 번째 반도체 팹 가동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1∼2년 앞당긴 2029년 하반기로 설정했다. 호남권에서도 신규 팹 건설을 추진한다. 광주군공항 부지는 국유지 특성상 토지 보상 등에 따르는 절차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는 게 장점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통해 40조원이라는 현금 실탄을 마련하고 이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건설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건설 및 장비·부대비용 ▲극자외선(EUV) 스캐너 2등 기계장치 취득과 시설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 CNBC와 블룸버그TV에 출연해 “(AI)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의 공급 능력은 그 수요를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향후 5년 안에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도 모든 고객이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면서 투자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양사의 천문학적 국내 투자 발표 후 미국 정부의 대미 투자 압박도 거세지고 있어 미국 내 추가 투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9일 마이크론의 뉴욕주 클레이 타운 팹 건설 현장을 찾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메모리 ‘빅3’ 중 한 곳인 미국 기업 마이크론도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 규모를 계속 늘리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2035년까지 미국 투자 규모를 2500억 달러로 확대하고, 자사 D램의 40%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미국 내 17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6월 투자액을 2000억 달러로 상향했고, 이번에 다시 500억 달러를 증액했다.
기업공개(IPO)를 앞둔 중국 기업 CXMT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CXMT는 IPO로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인 후, 생산라인 업그레이드 및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개발에 나선다는 포부다. CXMT는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는데 실적 개선세가 가파르다. 하나증권은 이에 대해 “AI 연산력 수요 급증에 따른 D램 공급 부족과 3개 팹 풀가동, 고부가 제품 중심의 믹스 변화가 동시에 작용한 데 따른 결과”라고 진단했다.
한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8%로 가장 많고, 다음은 SK하이닉스(29%), 마이크론(22%), CXMT(8%)순이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