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합계가 2경원을 넘는 국내외 인공지능(AI) 기업 수장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모였다.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빅테크와 향후 5년간 9500억 달러(약 1375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급·생산 협력을 추진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기업가치 합계 2경원이 넘는 대한민국과 글로벌 대표 기업들이 준비한 대규모 AI 투자 이니셔티브를 전 세계에 알린다”며 “AI 시대의 미래를 대한민국과 함께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혹 탄 브로드컴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등이 참석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화상으로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자리했다. AI 모델과 반도체, 데이터센터, 제조업, 로봇, 인터넷 플랫폼을 대표하는 기업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번 서밋을 계기로 체결되거나 추진되는 협력은 총 6건이다. 반도체 분야 협력 규모는 삼성전자 2000억 달러, SK그룹 7500억 달러다.
삼성전자는 브로드컴과 2030년까지 5년간 20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협력을 추진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브로드컴의 AI 가속기에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고 주요 반도체 제품에 2나노미터 이하 파운드리 공정과 첨단 패키징 기술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SK그룹은 엔비디아를 포함한 글로벌 빅테크에 향후 5년간 7500억 달러 규모의 첨단 메모리를 공급하는 협력을 추진한다. 이 가운데 엔비디아와의 협력 규모가 5000억 달러다. 나머지 2500억 달러는 다른 글로벌 기업과 추진하는 장기 공급 협력으로 거래 상대방과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황 CEO는 “엔비디아와 한국의 PC방은 함께 성장했다”며 “엔비디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AI 여정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이어 SK와의 사업 관계를 5000억 달러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대규모 투자·공급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금액이 생소할 수는 있어도 허황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황 CEO가 만날 때마다 “더 많은 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며 AI 인프라 확대에 따른 메모리 수요 증가를 강조했다.
협력 범위는 반도체 공급에서 AI 데이터센터로 확대된다. 국내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는 최대 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계획대로 조성되면 약 200만개의 GPU가 투입될 수 있는 규모다.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최대 2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한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 시스템을 도입하고 SK하이닉스가 HBM4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앤트로픽,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와의 데이터센터·메모리 협력도 확대한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와 글로벌 자산운용사 브룩필드로부터 총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융 지원을 받아 AI 팩토리를 확장한다. 엔비디아가 10억 달러를 지분 투자하고 브룩필드가 9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다.
네이버는 세종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AI 팩토리 용량을 55MW에서 200MW로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1GW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해진 의장은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네이버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트먼 CEO는 한국의 기술 수용 속도를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려면 한국을 보면 된다”며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 3대 메가 프로젝트가 AI 산업의 다음 단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로봇 개발·검증을 위한 ‘로봇 레퍼런스 플랫폼’을 공동 구축한다. 엔비디아 블랙웰 GPU 5만개 규모의 AI 인프라를 확보하고 차량용 컴퓨팅 플랫폼을 자율주행차 개발에 적용하는 협력도 추진한다.
정 회장은 “빅테크와의 협력 결과가 국내 피지컬 AI 산업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국내 로봇·AI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한 개방형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용 회장은 “AI 모델과 첨단 반도체, 데이터센터와 전력을 연결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 탄 CEO도 한국의 프런티어 AI 모델 개발과 소버린 AI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발표된 내용만을 가지고 구체적인 금액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삼성전자·브로드컴 협력은 MOU, SK·엔비디아 협력은 의향서(LOI)를 토대로 한다. 대부분 향후 5년간 예상되는 반도체 공급과 인프라 사업을 합산한 규모다.
실제 공급계약 체결과 데이터센터 착공, 투자금 집행까지는 개별 기업의 이사회 승인과 수요 검증, 인허가 절차가 남아 있다. 전력망과 용수 확보, 지역 주민 수용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이번 서밋을 한국을 AI 반도체 생산기지에서 모델·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연결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혁신과 투자의 무대로 대한민국을 선택해 달라”며 “한국의 국민과 기업이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