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아니라 마치 도박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요즘 증시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예측도, 분석도 무의미해진 시장에서 개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매일같이 거세지는 풍랑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올해 초 이씨는 우상향을 그리는 시장 분위기에 ‘지금이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나만 소외된다’는 생각에 모아둔 목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계산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기대했던 본격적인 상승장 대신 찾아온 것은 하루가 다르게 폭등과 폭락을 오가는 극심한 ‘널뛰기 장세’였다.
지수가 급락해 매도 사이드카가 걸린 날엔 손실이 불어나 가슴을 졸였고, 다음 날 매수 사이드카가 터지며 반등할 때는 ‘이제 오르나’ 싶어 안도했지만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예측 불가능한 행보가 수주째 이어지면서 원금의 40%가 넘는 손실이 찍혔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결국 이씨는 국내 주식을 상당 부분 처분하고 남은 자금을 모두 미국 주식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장이 열릴 때마다 널뛰는 국장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라며 “투자가 아니라 마치 도박판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어 미련 없이 짐을 쌌다”고 토로했다.
한 투자자의 씁쓸한 고백처럼, 현재 국내 증시는 눈에 띄는 기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사이드카 발동 횟수가 총 39회를 기록하며 역대 연간 최다 기록을 일찌감치 경신했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사이드카나 서킷브레이커 같은 시장 안정화 조치가 가동되지 않은 날이 단 3거래일에 불과했을 정도로 시장 전체가 극심한 기복을 보였다.
이처럼 지수가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시장의 공포심 역시 최악으로 치달았다. 실제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는 지난달 29일 종가 기준 96.94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뛰어넘은 수치다.
문제는 가뜩이나 큰 변동성 속에 단기 차익을 노린 공격적인 자금 흐름까지 엉키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전반에서 급등락이 일상화되자 단기간 고수익이나 손실 복구를 노린 자금이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로 몰려들며 장의 흔들림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신 또한 한국 증시의 기형적인 변동성을 향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 시장의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열풍을 조명하며 “한때 세계 경제 성장의 신뢰할 만한 지표로 여겨졌던 한국 증시가 무법 천지 카지노로 변모해 규제 당국과 투자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증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동안 주요국 증시와의 격차도 급격히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한 달간 미국 S&P500지수가 2% 상승하며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한 반면, 코스피지수는 23% 급락해 주요국 증시 중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 같은 국내 증시의 정체와 변동성에 부담을 느낀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이탈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달 들어 보름 만에 개미들이 순매수한 미국 주식 규모는 1조4000억원에 달한다. 널뛰는 국내 증시에서 지친 개인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이는 미국 시장으로 자금을 대거 이동시킨 결과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 현물을 12조원 넘게 순매도한 반면 상장지수펀드(ETF)는 6000억원 가까이 순매수했다. 특히 상승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ETF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F를 동시에 사들이는 양방향 전략을 통해 향후 장세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다솔 기자 givesol@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