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고려인 A는 8년 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당시 ‘엄마’, ‘아빠’, ‘언니’라는 말 밖에 할 줄 몰랐다는 그는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며 조상들의 조국에 적응 중이다. 여전히 한국어 발음이 어렵지만 훗날 검사를 꿈꾸며 공부하는 A가 최근 롯데장학재단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
롯데장학재단은 ‘2026 신격호 롯데 고려인 지원사업’을 통해 저소득층 고려인 가정 아동·청소년 65명에게 총 1억원 상당의 생활 지원금과 한국어교육을 제공한다고 16일 밝혔다.
전날 서울 중구에 위치한 전통 복합문화공간인 한국의집에서 열린 전달식에는 지원 가족 외에도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어정욱 굿네이버스 ESG사회공헌협력실장, 조유리 대한고려인협회 사회법률위원장, 고려인 지원 단체 ‘아리랑’ 윤민정 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고려인은 소비에트연합(소련) 붕괴 후의 구 소련 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의미하는 민족 명칭이다. 19세기 후반 함경도 북부 지역의 주민들이 기근 등을 피해 연해주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인촌이 형상됐고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는 이곳의 한인이 18만 명에 이르렀다.
1937년 소련당국은 소련과 일본의 극동지역 국경 긴장 문제 완화, 한인들의 일본 스파이 활동 우려, 중앙아시아의 농업 활성화, 농업 집단화 정책, 소수민족 정책의 일환 등을 이유로 연해주의 한인들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이때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뿌리를 내린 이들이 고려인 1세대다.
고려인 중에는 취업, 자녀교육 등을 고려해 조국인 한국에 들어와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국내 거주 고려인은 2013년 2만1441명에서 2024년 약 10만7381명으로 약 5배 증가했다.
이에 롯데장학재단은 강제이주의 역사를 간직한 고려인의 후손들이 같은 뿌리를 가진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미래세대에 이어간다는 취지로 이번 지원사업을 기획했다.
장혜선 이사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낯선 땅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 고려인 선조들과 일본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할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님의 삶에는 도전과 개척의 정신이 담겨 있다”며 “조국인 한국에 돌아온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잘 정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롯데장학재단은 글로벌 아동권리 비정비구(NGO) 굿네이버스와 손잡고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의 51.4%가 거주하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위기가정 아동·청소년 65명을 선발했다. 지역별 고려인 단체의 수요를 반영해 25명에게 생활지원금 및 한국어교육(1인당 약 152만원 상당), 30명에게 생활지원금(1인당 150만원), 10명에게 한국어교육(1인당 약 100만원 상당)을 제공한다.
한국어교육은 학생별 수준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행된다. 초급 학생은 기초 이론 중심의 학습지 교육을, 중·고급 학생은 지역 도서관 방문 등 체험학습, 동화책을 활용한 문해력 교육 등을 제공한다. 교육 전후로는 한국어 능력평가를 실시해 학습 성과를 점검할 예정이다.
인천 지역에서 고려인 정착을 돕는 단체인 대한고려인협회의 조유리 사회법률위원장은 이날 10살 고려인 아이의 감사편지를 대신 낭독했다. A는 롯데장학재단의 지원금을 할머니의 병원비, 그리고 검사가 되겠다는 꿈과 미래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장 이사장은 “한국에 왔을 때 같은 동포이기에 따뜻하게 맞아주리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며 “우리 재단처럼 여러분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사업이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아물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롯데장학재단은 고려인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을 위해 올해 ‘장혜선 롯데 위기 탈북민 긴급지원’ 사업을 신설하고, 생계비·주거비·법률·심리상담·교육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