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장댓비가 쏟아지던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법률구조공단 상담실 복도. 의자에 걸터앉은 30대 김모씨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땀과 빗물로 얼룩진 셔츠를 입은 그는 연신 상담실 문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며 다급하게 발을 굴렀다. 그때 김씨의 손에 쥐여 있던 스마트폰이 다시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 가득 이름 없는 ‘010’ 번호가 수십개째 찍혀 내려갔다. 급히 화면을 바닥으로 뒤집어 놓았지만, 또 다른 번호로 집요한 독촉 진동이 스며들었다.
시작은 당장 낼 월세가 부족해 사채업자들에게 손을 대면서부터였다. 처음 빌린 돈은 수십만원가량이었지만, 기일을 지키지 못하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높은 이자율 탓에 한 달도 되지 않아 원리금이 1000만원 수준에 이르렀다. 사채업자들은 김씨의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욕설이 담긴 문자를 보내고, 유치원에 전화해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일상적인 협박과 추심에 시달리던 김씨가 결국 선택한 것은 채무자대리인 제도. 이 제도는 미등록대부업자 등으로부터 불법 채권추심 피해를 보거나 법정 최고금리(연 20%)를 초과해 대출받은 피해자를 보호·구제하기 위해 채무자대리인(변호사) 선임을 무료로 지원한다.
실제로 최근 김씨와 같은 처지로 공단의 문을 두드리는 발길은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개인회생파산지원센터 관계자는 “신용공여가 일상화되면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만큼 금융 채무 자체가 많이 늘었고, 불법사금융으로 공단을 찾은 분들의 사건 수도 작년보다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사회적 위기 채무자들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을 확대하려는 분위기인 만큼, 공단 역시 위기 채무자나 개인회생·파산 신청자, 불법사금융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구제 금융 지원책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지원한 30대 피부관리사 박씨의 사례도 비슷하다. 박씨는 교통사고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활비가 부족해졌다. 급한 마음에 SNS에서 발견한 대출 광고를 통해 100만원을 빌렸다. 그러나 이후 상환 압박이 시작됐고,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또 다른 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돌려막기’가 반복됐다.
결국 박씨는 총 9건의 불법 대출을 이용하게 됐다. 차입금은 약 980만원 수준이었지만 상환액은 1800만원에 달했다. 연 이자율로 환산하면 약 8000%에 이르는 초고금리였다. 문제는 대출 과정에서 요구받은 개인정보였다.
업자들은 신분증뿐 아니라 본인 사진, 가족 연락처, 친구 연락처까지 요구했다. 이후 법정이자를 훨씬 초과하는 돈을 갚았음에도 추가 상환을 요구했고, 응하지 않을 경우 사진과 채무 사실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신복위에 따르면 불법사금융업자들은 대출 과정에서 확보한 사진과 연락처를 이른바 ‘불법 담보’로 활용한다. 연체가 발생하면 가족과 지인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거나 SNS에 게시하겠다고 협박하며 피해자를 압박한다.
불법사금융 문제가 커지는 배경에는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 악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포용금융 강화’를 제시했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고 과도한 채무 문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금융소외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정책서민금융 상품 금리 인하, 금융권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 장기·과잉 추심 근절, 불법사금융 차단 등이 주요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이주희·주다솔 기자 jh224@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