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연기·문화·정치 활동으로 인연을 이어온 배우 최불암이 지난 29일 향년 87세로 별세하면서 재계의 추모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고인은 정 명예회장의 삶을 드라마로 옮겼을 뿐 아니라 현대의 공연장 운영에도 참여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정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등이 방문했다.
최불암은 MBC ‘야망의 25시’에서 정 명예회장 역을 맡으며 친분을 쌓았다. 2004년 ‘영웅시대’에서는 정 명예회장을 모델로 한 세기그룹 창업주 천태산을 연기했다. 생전 교류하며 익힌 말투와 모습을 배역에 반영했다.
당시 충북 단양 현대시멘트 공장 촬영 현장에서 진행한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는 정 명예회장의 일에 대한 열정을 회고했다. 촬영장을 찾는 현대 직원들과도 가까워졌다며 “직원들이 날 진짜 회장 대하듯 인사해주고 안부까지 물어줄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최불암은 정 명예회장을 기업을 일군 경영자인 동시에 농사꾼의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로 기억했다. 2004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는 “인내와 끈기, 추진력을 가진 진정한 한국인”이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교류는 문화사업으로 이어졌다.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이 들어설 때 최불암은 현대 측의 권유로 현대예술극장을 운영했다. 극단 대표를 맡아 뮤지컬 ‘애니’를 제작하고 출연했으며, 정 명예회장은 개막작인 이 공연에 참석해 격려했다.
정 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에도 여러 차례 초대받았다. 최불암은 2011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드라마 출연진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던 정 명예회장 부부를 소탈하고 검소한 사람들로 기억했다. 손잡이 천이 닳은 소파를 그대로 쓰던 모습도 소개했다. 정 명예회장이 ‘전원일기’에 농부로 출연해 옛 농사법을 소개하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무산됐다는 일화도 전했다.
정계 진출에도 정 명예회장의 영향이 있었다. 최불암은 1992년 그가 창당한 통일국민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제14대 국회에 입성했다. 당초 정치에 뜻이 없었으나 정 명예회장의 요청으로 지원에 나섰다는 것이 생전 설명이다. 2001년 3월 25일 정 명예회장 영결식에서는 구상 시인이 쓴 추모시를 대독했다.
한진그룹과는 광고와 아동 후원 활동으로 인연을 맺었다. 대한항공 광고 모델로 활동했던 최불암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대한항공의 지원으로 공익광고를 촬영했다.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과는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만났으며, 2019년 4월 조 전 회장 별세 당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앞서 2016년 조 전 회장의 모친상 때도 조문한 그는 당시 “어린이재단에서 대한항공에 신세를 많이 졌다”고 말했다.
금융권 출신 인사와의 인연도 아동복지 활동으로 이어졌다. 우리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최불암과 재단 활동을 함께했고 이번 장례의 위원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2023년 취약계층 아동을 지원하는 ‘산타원정대’ 발대식에도 함께 참석했다.
황 회장은 30일 빈소 브리핑에서 고인을 “한평생 아이들을 ‘또 하나의 나’로 품으신 진정한 어른”으로 기렸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1월 2일 오전 7시 40분이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