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추가 압박하겠다고 밝히자 국내 산업계가 전장 장기화에 대응한 총력 대비 태세에 돌입했다. 가장 타격이 큰 정유업계를 비롯해 전 산업계에서 수급 불안, 수요 위축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대국민 연설에서 “앞으로 2∼3주에 걸쳐 이란에 대해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그들(이란)을 석기 시대로 되돌릴 것”이라면서 “곧 모든 미국의 군사 목표를 완수하는 데 가까워졌다”고 발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자 국제 유가는 상승 반전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발언 이후 6월 선물 브렌트유는 6% 넘게 상승하고 있다.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25%가량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국내 산업계도 이에 대해 대책 마련에 분주한 양상이다. 정유업계는 비축유 활용과 스팟 물량 확보 등으로 단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라 추가 수단도 모색 중이다. 정부의 ‘비축유 스왑(SWAP)’ 제도를 활용해 수급 불안을 완화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당장 다음 달부터 재고 부족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달부터면 재고가 바닥날 거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석유화학 업계는 이미 가동률 조정에 들어갔다. 나프타 수급 불안과 비용 상승 영향으로 일부 업체는 NCC 가동률을 60%대까지 낮추고 있고, 주요 기업들은 고객사에 불가항력 선언 가능성도 통보한 상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주요 석화 제품 관련 6개 부처 및 9개 업종협회가 참석하는 ‘중동전쟁 관련 업종별 석화 제품 수급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총력 대응 의지를 재차 밝혔다. 김 장관은 “나프타는 산업의 쌀을 넘어 일상생활을 떠받치는 핵심원료”라며 “흔들림 없는 석화 제품 공급망을 구축해 국민 생활과 산업의 혈관이 끊기지 않도록 총력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수급 우려가 제기된 수액제 포장재, 에틸렌 가스, 종량제봉투 등 석화 제품과, 헬륨, 브롬화수소, 황산 등 소재의 경우 현재 수급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석화 제품은 종류가 다양하고 공급망이 매우 복잡하다는 점이 우려 요인이다.
해운·항공 등 물류 업종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27일 기준 1826.77로 2월 27일(1333.11) 대비 큰 폭 상승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이어 홍해 봉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물류비용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 항공사 5곳과 티웨이항공이 비상 경영을 선언했다.
완성차 업계는 신차 수요 위축 우려가 커졌다. 유가 상승에 따른 차량 운행 비용 증가와 차량 부제 확대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내외장재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합성고무(폴리머) 가격 상승으로 제조원가 부담과 공급망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공사비 상승 압박이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공사비원가관리센터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최근 6개월 연속 올라 지난 2월 133.69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사태 악화에 따른 피해를 줄이려면 공정 에너지원 다각화, 공급망 조기경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글로벌산업협력연구실 전문연구원은 “철강·화학·시멘트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을 중심으로 공정 에너지원 다각화와 원료 조달선 분산 전략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원유·LNG와 나프타·무수암모니아 등 에너지 연계 산업재를 포함한 공급망 조기경보 체계를 고도화해 가격 급등 및 공급 차질 발생 시 선제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일 ‘글로벌 경제 현안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한 기업 간담회’에서 “현재 가장 시급한 이슈인 원유·나프타 수급 불확실성에 대해 인도, UAE 등 주요국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주요국 상무관을 통해 우리 기업 애로 해소를 위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