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 노사가 성과급 지급 방식을 둘러싸고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성과급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하면서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열린 이천포럼 강연에서 “일부 직원들이 1700% 제안에도 만족하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설사 5000%까지 늘어난다 해도 행복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행복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가 함께 설계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발언이 단순히 보상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보상의 구조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하자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기적 만족보다는 장기적 안정과 조직 내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근 SK하이닉스 사측은 성과급 재원인 영업이익 10% 중 지급 한도로 정했던 1000%를 1700% 이상으로 올리고 남는 재원도 절반 이상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측은 남은 재원의 절반은 연금·적금 형태로 적립해 업황이 하락하는 시기에 나눠 지급하자는 보완책도 함께 내놨다. 이에 성과급 재원이 약 2조3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 특성상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므로 성과 배분 방식에도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사측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이미 회사와 맺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합의를 근거로 삼으며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기준을 적용하면 올해 필요한 성과급 재원은 3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노조는 “회사가 역대 최대 실적을 내는 상황에서 오히려 성과급 기준을 후퇴시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만 영업이익이 16조원에 달하고, 연간 전망치도 37조원 선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회사가 내세우는 위기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지난 5월부터 10차례 교섭을 이어왔지만 사측과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교섭 과정에서 노조는 ▲성과급 지급 원칙의 준수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 ▲사내 집회 및 기자회견 등을 통해 조직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달 초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는 “회사가 1700% 지급안을 고수한다면 집단행동도 불사할 수 있다”는 강경론이 제기됐다. 일부 지부는 성과급 관련 집회를 준비하며 여론전을 확대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성과 배분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이 조합원과의 신뢰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의 문제”라며 “기존 합의를 파기하는 방식으로는 협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갈등이 단순한 금액 다툼을 넘어 성과 배분 구조 전반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황은 호황과 불황이 뚜렷하게 교차하는 산업이어서 단기 성과에만 연동된 보상 체계는 언제든 분쟁을 재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성과급 지급률, 지급 시점, 장기 보상 체계 등 세부 요소들을 노사 공동으로 설계해야 분쟁 재발을 줄일 수 있다”며 “경영진과 노조 모두 절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