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이란 기회와 세계 반도체 시장의 불황이란 위기를 동시에 맞은 삼성전자가 돌파구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이지만 다시 전담팀을 꾸려 전 세계적인 AI 열풍에 합류하고자 한다. HBM 개발에 먼저 뛰어들고 실제 성공했음에도 향후 성장성을 예측하지 못해 투자를 머뭇거리면서 밀린 것이 뼈아팠다. 파운드리 분야도 2030년까지 해당 분야에서 1위를 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선두업체인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다시 힘을 모으고 있다.
우선 올해 초 HBM 전담팀을 꾸렸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김경륜 상무는 최근 자사 뉴스룸 기고문에서 “차세대 HBM 초격차 달성을 위해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시스템LSI, AVP의 차별화된 사업부 역량과 리소스를 총집결해 경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혁신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삼성전자는 올 초부터 각 사업부의 우수 엔지니어들을 한데 모아 차세대 HBM 전담팀을 구성해 맞춤형 HBM 최적화를 위한 연구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를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잠정 실적 발표에서 영업이익(9조1000억원)이 시장 기대치(증권사 컨센서스 10조4000억원)보다 낮게 나와 충격을 줬다. 주요 고객사에 대한 HBM 공급 지연, 지지부진한 파운드리 사업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백길현 유안타증권은 연구위원은 지난 11일 보고서에서 “파운드리·시스템LSI의 적자 폭은 전 분기 대비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도 삼성전자는 AI 붐으로 늘어난 HBM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HBM은 AI 열풍 속 대표적인 고부가가치로 품목으로 꼽히는데, D램 대비 이익률이 2~5배가량 높다. 삼성전자는 현재 HBM3E 8단·12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한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인데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SK하이닉스는 양산 시기도 불분명했던 HBM 연구 조직을 없애지 않고 투자를 지속했지만, 삼성전자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조직을 키우지 않은 탓에 HBM 연구 조직이 힘을 받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야심 차게 뛰어든 파운드리 사업 역시 암울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파운드리 및 LSI사업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11.5%에 그친다. 업계 1위 TSMC(62.3%) 대비 50%포인트 넘게 격차가 벌어졌다.
이런 위기가 삼성전자를 다시 뛰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늘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응해온 삼성전자가 미-중 갈등 속에서도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반전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은 연구위원은 지난 8일 보고서에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 회복에 대한 의지를 밝힌 삼성전자가 향후 HBM에 대한 과잉 투자보다는 기술 리더십 탈환을 최우선으로 목표하고, 파운드리 사업의 재정비를 통해 과거 ‘패스트 팔로어’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