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출액이 10조인 회사(두산밥캣)의 주식 1주를 매출액 1000억(두산로보틱스)밖에 되지 않는 회사의 주식 0.63주로 교환해주겠대요. 투자자를 완전 바보로 아는 건가요?”
28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이 소액주주를 기만하는 개편안으로 인해 후폭풍이 거세다. 최근 두산그룹은 알짜기업인 두산밥캣을 대주주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인적 분할해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개편안을 내놨다. 이에 소액 주주들은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까지 지난 24일 두산로보틱스에 합병 및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다시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주식교환 비율은 1대 0.63으로,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라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실적 기반으로 볼 때 96대 4가 돼야 하는데 시가총액으로만 기준을 삼아 실제로는 49대 51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제보플랫폼 제보팀장이 2023년 재무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두산밥켓의 매출은 9조7500억원이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1, 매출액 대비 주가비율(PSR)은 0.51이다. 반면 두산로보틱스의 매출은 530억원이며 PBR은 17.41, PSR은 98.76에 달한다. 미국의 주요 로봇 관련 기업 iRobot의 2023년 매출이 1조2300억원에 PBR 1.47, PSR 0.42인 것과 비교하면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매우 고평가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액주주로서는 결국 밥캣을 ‘적자기업 물타기’에 끌어들였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연 매출액이 10조원에 육박하는 두산그룹의 캐시카우다. 두 기업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두산그룹은 오는 9월2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에 반대하는 두산밥캣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확보하는 자사주를 임의 소각하는 방안을 결의한다. 두산밥캣 자사주가 소각되면 향후 배정될 두산로보틱스 발행 물량이 줄어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소액주주 달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업계는 두산이 소액주주의 이익을 무시하고 두산 자회사들 간의 복잡한 지분 구조와 내부 거래를 통한 희생양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이러한 총체적인 사태는 상법 제382조 3항,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한 법적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이사의 충실 의무 강화 및 무분별한 물적분할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하는 민간단체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22일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 세미나를 열어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각 사 이사회를 다시 열어 이번 결정이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지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시장법에 있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는 ‘두산밥캣 방지법’이라 불리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상장법인에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 의원은 지난 22일 열린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두산이 편법적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미명 하에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에게 증권신고서를 엄격히 심사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 후보자는 “시장의 우려를 알고 있으며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추후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금융당국까지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4일 두산로보틱스에 합병 및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두산로보틱스가 3개월 이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해당 증권신고서는 철회된다.
두산이 기대했던 바와 달리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이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두산밥캣에 대한 그룹의 개입 가능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며 두산밥캣의 ‘BB+’ 장기 발행자 신용등급과 채권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Credit Watch)’으로 지정했다.
김재원·이화연 기자 jkim@segye.com,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