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6년 전이다. 세계 최대 투자 회사에서 대규모 감축 소식이 전해졌다. 투자 회사의 핵심 인력으로 꼽히는 600명의 트레이더 중 598명을 해고했다. 인공지능(AI) 트레이더의 도입 때문이었다. 이 회사가 바로 골드만삭스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2014년부터 기술벤처기업인 켄쇼테크놀로지스가 개발한 AI 트레이더를 ‘채용’했다. 효과는 만점이었고, 당시 평균 연봉 6억원에 이르는 트레이더를 내보냈다. 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2명은 AI 트레이더의 업무 보조 역할을 할 사람들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이후 켄쇼테크놀로지스와 협업, AI를 고도화해 ‘워렌(Warren)’을 제작했다. 이들은 “전문 분석가 15명이 1개월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 및 예측하는 작업을 워렌은 단 5분에 끝냈다”며 “우리는 더 이상 투자 전문 회사가 아니다. IT 또는 AI 회사”라고 강조했다.
국내 일자리 가운데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일자리는 약 341만 개로 추정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전체 일자리의 약 12% 수준이다. 직업군별로는 대표적 고소득 직업인 의사, 회계사 등이 AI노출 지수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 조사국 고용분석팀 한지우 조사역과 오삼일 팀장은 16일 ‘BOK 이슈노트-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서 이 같이 분석했다. 이는 AI 노출 지수 상위 20%에 해당하는 직업을 식별하고,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를 더한 결과다. AI 노출 지수를 상위 25%로 확대할 경우, 해당 일자리는 약 398만 개로 늘어난다.
연구팀은 AI 노출 지수가 가장 높은 일자리로 고소득 직업인 일반 의사(상위 1% 이내), 전문 의사(상위 7%), 회계사(상위 19%), 자산운용가(상위 19%), 변호사(상위 21%)를 꼽았다. 이러한 일자리들은 대용량 데이터를 활용해 업무를 효율화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기자(상위 86%), 성직자(상위 98%), 대학교수(상위 98%), 가수 및 성악가(99%)는 AI 노출 지수가 낮았다.
임금수준과 학력수준별로 보면, 고학력·고소득 근로자일수록 AI에 더 많이 노출돼 있었다. AI가 비반복적·인지적 업무를 대체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고학력·고소득 일자리의 AI 대체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별로 보면, 정보통신업, 전문과학기술, 제조업 등 고생산성 산업을 중심으로 AI 노출 지수가 높았다. 최근 들어 정보통신업의 무선 네트워크, 제조업의 장비·모니터링 솔루션 등에 AI 기술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반면 숙박음식업, 예술·스포츠·여가 등 대면 서비스업은 예상대로 AI 노출 지수가 낮게 측정됐다.
산업용 로봇과 소프트웨어가 도입된 이후 관련 일자리가 감소하고 임금 상승률도 낮아졌다는 점에 비춰볼 때 AI는 대체 가능성이 큰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보고서는 “AI는 반복적 업무뿐만 아니라 기존 기술로는 한계가 있는 인지적 업무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술, 팀워크 능력, 의사소통 능력과 같은 소프트 스킬이 앞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AI 기술이 업무와 생활의 편리성을 가져다주지만, 소비자 후생 감소, 이윤 독점 심화 등의 부정적인 사회적 결과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AI가 적절한 규제 속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