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혼자선 못 버텨”…뭉쳐야 사는 청년들
② 스드메·집값 압박, “시작부터 버거워”
③ 비용 덜고 기회 넓혀, 청년 출발선을 잇는다
“식장은 내년 겨울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일단 혼인신고부터 하고 청약이랑 신혼부부 대출부터 넣으려고요.”
지난달 주말 오전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컨벤션홀에서 열린 웨딩박람회장. 이른 시간임에도 입구부터 상담 번호표를 받으려는 예비부부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상담 부스에 마주 앉은 이들은 드레스 원단 샘플을 손끝으로 꼼꼼히 확인하고, 일정표에 형광펜을 그어가며 플래너의 설명에 집중했다. 화려한 예식 화보를 넘기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물어가며 현실적인 예산과 조건을 차근차근 맞춰가는 풍경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부스 한쪽에서 예식 일정을 조율하던 직장인 이모(29)씨 커플은 이미 석달 전 구청에 혼인신고를 마쳤으며 살림도 이미 합친 상태다. 이씨는 “둘 다 서울에서 따로 자취를 하다 보니 매달 나가는 월세와 생활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며 “인기 있는 예식장은 1년 전부터 날짜가 꽉 차 예약조차 힘든 상황에서, 굳이 식장 잡기에 매달리기보다 신혼부부 전세대출과 청약 자격부터 챙겨 보금자리를 잡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람회장 로비에서 만난 최모(32)씨 역시 식장 예약 전쟁에 지쳐 순서를 뒤집었다. 최씨는 “주요 예식장 세 곳을 돌았는데 주말 골든타임은 이미 마감이었다”며 “식장 날짜에 쫓겨 스트레스받느니 전세대출부터 받아 집을 합치고, 식은 나중에 여유 생길 때 치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당초 비혼을 고민하다 현실적인 전환점을 맞아 결혼으로 방향을 튼 사례도 눈에 띄었다. IT기업 개발자 박모(34)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혼주의자에 가까웠다. 박씨는 “치솟는 집값과 물가를 보면서 혼자서는 온전한 자산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컸다”며“ 아플 때나 주거 문제처럼 혼자 감당하기 벅찬 현실적인 불안을 덜기 위해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부스 곳곳에서는 남들 하는 대로 따르기보다 각자의 형편과 취향에 맞게 일정을 조율하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불필요하게 겹치는 스튜디오 촬영을 과감히 줄여 여행 스냅으로 대신하거나, 본식 일정만 추려 간소하게 상담을 받는 식이다.
현장에서 7년째 상담을 맡고 있는 웨딩플래너 유모(36)씨는 “과거에는 예식장과 스드메 패키지를 정석대로 맞추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살림을 먼저 시작해 식은 간단히 치르고 싶다거나 각자 상황에 맞춰 선택지를 좁혀오는 2030이 부쩍 늘었다”며 “결혼식 자체의 격식보다 실제 둘의 생활 안정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처럼 청년들이 기존의 결혼 공식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을 택하는 배경에는 현실적인 경제 셈법이 자리한다. 치솟는 집값과 고물가 속에서 혼자 버티기보다 둘이 소득을 합치고, 신혼부부 금융 혜택 등을 활용해 주거를 마련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청년들의 결혼 의향은 81.4%로 높았지만, 필수 조건으로는 ‘소득 안정’(51.8%)과 ‘주거 마련’(47.1%)이 나란히 꼽혔다. 의지는 있어도 진입 장벽이 높은 탓에, 청년들이 기존 결혼의 틀 자체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집값과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 불필요한 결혼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는 등 실속을 택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무리하게 비용을 치르기보다, 새로 꾸릴 가정을 위한 책임감 있고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주다솔 기자 givesol@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