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기아와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이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유럽연합(EU)의 전기차 추가 관세를 피해 PHEV 판매를 늘리면서다. 전기차 중심으로 전개됐던 한중 자동차 경쟁이 내연기관과 전동화 기술을 결합한 과도기 시장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현대차·기아로서는 전기차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와 PHEV를 아우르는 제품 경쟁력이 유럽 시장 방어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11일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8월 EU 내 PHEV 신규 등록 대수는 75만8082대로 전년 동기 대비 19.6% 증가했다.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8%에서 10%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순수전기차(BEV) 비중은 15.8%에서 21.7%로 상승했다. 전기차 전환이 진행되는 가운데 PHEV도 별도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中 전기차 관세가 바꾼 경쟁 구도
중국 업체들의 유럽 시장 공략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달 파리모터쇼에 참가한 중국 브랜드는 20개로 2024년의 두 배 수준이다. 중국 업체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0.7%까지 높아졌다. 특히 PHEV 부문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26%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차의 PHEV 공세에는 EU의 통상정책이 영향을 미쳤다. EU는 2024년 10월 중국산 순수전기차에 보조금 상계관세를 부과했지만 PHEV는 해당 조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 외에 PHEV를 새로운 수출 주력 차종으로 활용할 유인이 커진 것이다.
중국 비야디(BYD)와 체리자동차 등은 배터리 기술과 내연기관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앞세워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전기 주행거리와 차량 가격을 동시에 강조하는 전략으로 순수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PHEV는 외부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와 내연기관을 함께 탑재한 차량이다. 일상적인 단거리 운행에서는 전기차처럼 활용하면서도 장거리 이동 시 엔진을 사용할 수 있다. 충전 인프라 접근성과 주행거리 문제로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는 소비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
◆현대차·기아, 기술력에 가격 경쟁력 더해야
현대차·기아는 유럽에서 전기차와 일반 하이브리드(HEV), PHEV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는 투싼과 싼타페 PHEV 등을 판매하며 기아 역시 스포티지와 쏘렌토 등 주요 SUV 차종에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을 갖추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유럽에서 승용차 60만3542대를 판매해 4.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전동화 차량 판매는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순수전기차 판매가 48% 늘어난 가운데 일반 하이브리드와 PHEV 판매도 합산 기준 11% 증가했다.
현대차·기아의 강점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하이브리드 구동계, 현지 생산기반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는 차량 가격과 전기 주행거리, 배터리 성능을 포함한 상품성 전반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중국 업체들은 배터리 공급망의 가격 경쟁력을 활용해 PHEV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맞서 현대차·기아가 기존 SUV 상품성과 브랜드 신뢰도를 유지하면서도 가격 격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PHEV 시장에서는 배터리 용량과 전기 주행거리뿐 아니라 실제 연료 소비량도 중요한 경쟁 요소다. 충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행할 때의 연비와 차량 무게, 유지비용까지 고려하면 단순히 배터리가 크거나 전기 주행거리가 길다고 경쟁력이 높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PHEV는 과도기 전략…장기 승부는 전동화
PHEV 시장 확대가 전기차 전환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EU에서 순수전기차 판매 비중은 PHEV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현대차·기아 역시 전기차 투자를 유지하면서 지역별 수요에 맞춰 하이브리드 제품군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기아는 지난 4월 발표한 중장기 전략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13종으로 확대하고 PHEV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포함한 판매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병행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유럽의 환경규제도 변수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말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의 유연성을 높이는 개정안을 제안했다. 다만 규제 변경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며, 향후 제도 설계에 따라 PHEV의 경제성과 시장성도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유럽 시장의 승부는 특정 동력계 하나가 아니라 가격과 탄소배출 규제 대응, 현지 생산능력을 결합한 종합 경쟁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기아가 중국 업체들의 PHEV 공세에 대응하려면 전기차 중심의 성장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하이브리드 제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유럽에서 PHEV는 전동화 전환기의 보조 수단을 넘어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성과 시장점유율을 가르는 새로운 경쟁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