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시대…청구서로 돌아오나

최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이용객이 주유하고 있다.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 달러 선을 넘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될 전망이다. 뉴시스
최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이용객이 주유하고 있다.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 달러 선을 넘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될 전망이다. 뉴시스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섰지만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오히려 17주 연속 하락했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시행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국제유가 상승분의 국내 전가를 막고 있어서다. 다만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덜 낸 비용 가운데 일부가 결국 정부 재정 부담으로 옮겨가는 구조여서 고유가 장기화에 따른 ‘숨은 청구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9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859.1원으로 전주보다 1.1원 내렸다. 경유도 0.5원 하락한 1844.0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두바이유는 배럴당 114.7달러로 전주보다 14.4달러 뛰었다.

 

국내 가격과 국제유가가 엇갈리는 배경에는 최고가격제가 있다. 현재 정부가 정한 9차 최고가격은 휘발유 ℓ당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이다. 이 가격은 주유소 판매가격이 아니라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가격의 상한이다. 세금과 유통비 등이 더해지는 만큼 실제 주유소 판매가격은 이보다 높다.

 

물가 억제 효과는 상당하다. 재정경제부는 8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3.1% 올랐지만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3.6% 상승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최고가격제가 물가상승률을 0.5%포인트 낮췄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석유사업법은 최고가격 지정으로 정유사 등이 입은 손실을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도 이번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을 원가 등을 기준으로 보전하기로 했다. 원유 도입비와 생산·판매비 등을 토대로 적정 마진을 고려해 최고액 정산위원회가 지원액을 정한다. 다만 9월 초 현재 최종 손실보전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당초 최고가격제가 6개월간 유지되는 상황을 전제로 목적예비비 4조2000억원을 마련했다. 제도는 지난 3월 13일 시작돼 이미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2027년도 예산안에도 올해 4분기 시행분 손실 정산을 위한 1조4497억원을 반영했다. 모두 집행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제도 장기화에 대비해 상당한 규모의 재정을 확보한 셈이다.

 

유가가 다시 뛰면서 딜레마는 더 커졌다. 11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104.61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0.05달러에 마감했다. 최고가격을 그대로 두면 정유사 원가와 공급가격 상한의 격차가 벌어져 손실보전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상한을 올리거나 제도를 종료하면 그동안 억눌렸던 유가 상승분이 국내 기름값과 물가에 빠르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최고가격제는 고유가 충격을 없앤 정책이라기보다 충격의 시점과 부담 주체를 바꾼 정책에 가깝다.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가 길어질수록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피한 부담의 일부는 재정이라는 다른 청구서로 돌아올 수 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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