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이 글로벌 자율주행 기업의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업체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면서다. 자율주행 경쟁의 무게중심도 차량 제조에서 소프트웨어와 주행 데이터 확보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교통량이 많고 버스·택시·오토바이와 보행자가 뒤섞인 강남은 자율주행 기술을 검증하기 까다로운 도심 환경으로 꼽힌다. 해외에서 개발한 자율주행 시스템이 국내 도로에 적응하려면 한국 특유의 교통환경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中 포니AI, 강남서 8만㎞ 주행
중국 업체들의 움직임이 빠르다. 중국 자율주행 기업 포니AI 기술을 적용한 차량은 국내 파트너사 퓨처링크를 통해 서울 강남에서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퓨처링크에 따르면 강남 일대 누적 자율주행 거리는 약 8만㎞다.
양사는 포니AI의 7세대 로보택시를 국내에 도입해 2028년 서울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고 향후 최대 200대 규모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최대 검색기업 바이두가 운영하는 자율주행 서비스 아폴로고도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로보택시 업체 위라이드 역시 한국을 해외 사업 확대 후보 시장으로 검토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용화 경험을 쌓은 로보택시 기업들이 한국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웨이모·테슬라도 한국 시장 변수
미국 업체들도 변수다. 알파벳 계열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는 미국 주요 도시에서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한국법인 설립 움직임까지 알려지면서 국내 시장 진출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테슬라는 차량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자율주행 기능을 고도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산업의 경쟁 구도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현대자동차의 주요 경쟁자가 토요타·폭스바겐·GM 등 완성차 업체였다면 자율주행 시대에는 웨이모와 포니AI 같은 기술 기업도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쟁력이 엔진과 차체 등 하드웨어에서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데이터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와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강남 주행데이터 가치 커져
해외 자율주행 기업의 국내 진출과 함께 주행 데이터의 가치도 부각되고 있다. 강남은 버스와 택시의 잦은 차선 변경, 이륜차 통행, 불법 주정차, 골목길과 보행자 등 자율주행 시스템이 대응해야 할 변수가 많다. 인간 운전자에게 익숙한 상황도 AI에는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학습해야 하는 데이터다.
예컨대 혼잡한 도로에서 차선을 변경할 경우 교통법규만 엄격하게 적용하면 차량 흐름에 합류하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예측해 차선을 점진적으로 점유하면 실제 교통환경에는 보다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른바 한국 운전자들의 ‘눈치 운전’을 자율주행 AI가 어느 수준까지 학습해야 하는지가 기술적 과제가 되는 셈이다. 국가별 운전문화가 다르다는 점도 변수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확보한 데이터만으로 서울의 도로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면 국내 실도로 데이터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장 개방과 데이터 주권 과제로
해외 업체의 국내 진출은 자율주행 산업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본격화하면 소비자는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고 국내 기업의 기술 개발을 자극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자율주행차가 수집하는 데이터의 관리 기준은 풀어야 할 과제다. 자율주행 차량은 이동 과정에서 주변 차량과 보행자, 도로와 건물 등 도시 공간에 대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한다. 해외 기업이 국내에서 대규모 서비스를 운영할 경우 해당 데이터의 저장 장소와 활용 범위, 해외 이전 여부 등을 둘러싼 논의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향후 로보택시 사업자 선정에서도 기술력과 가격만으로 사업자를 평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안전성과 국내 도로 적응 능력뿐 아니라 데이터 관리, 사고 발생 시 책임, 국내 산업과의 협력 수준 등이 주요 평가 기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2030년 서울에서 완전 무인 로보택시가 본격적으로 운행된다면 경쟁 구도는 현대차그룹 등 국내 진영과 미국 웨이모·테슬라, 중국 포니AI·바이두·위라이드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 자율주행 경쟁이 자동차 판매를 넘어 도시 이동 데이터를 확보하는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누가 가장 먼저 강남에서 운전자를 없앨 것인지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서울의 주행 데이터를 누가 확보하고 관리할 것인지가 향후 자율주행 시장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