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전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온 유럽 동맹국들을 상대로 안보·무역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독일 주둔 미군 감축 방침을 공식화한 데 이어 유럽연합(EU)산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관세 인상도 예고했다.
미 국방부는 1일 피트 헤그세스 장관 지시에 따라 독일에 주둔 중인 미군 약 5000명을 철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번 감축이 유럽 내 병력 태세 검토와 현장 여건을 반영한 결정이라며, 6개월에서 12개월 안에 완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는 현재 약 3만5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독일 주둔 병력 감축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나왔다. 독일은 러시아 견제를 위한 미국의 유럽 내 핵심 거점으로 꼽히는 만큼, 주독미군 감축은 단순한 병력 조정 이상의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가디언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란전과 관련해 미국이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미군 감축 결정이 나왔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분야에서도 유럽을 압박했다. 그는 같은 날 다음 주부터 EU산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EU는 지난해 7월 무역협상에서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관세 복원을 예고했다.
이 같은 조치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균열이 안보와 통상 영역으로 번지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나토 주요 회원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등 미국의 요청에 소극적이었다며 불만을 드러내 왔다. 그는 독일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이란전 수행에 비협조적이거나 비판적인 유럽 국가 주둔 미군 감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이 유럽에 제공해온 안보 우산과 미국 시장 접근성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양상이다. 유럽 입장에서는 주독미군 감축이 러시아 견제 태세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자동차 관세 인상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제조업에도 직접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관심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으로도 향한다. 한국과 일본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는 동참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의 파병 요청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아직 한·일을 겨냥한 구체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전에서 동맹국의 기여 부족을 거듭 언급해온 만큼 외교·통상 당국은 파장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국방부는 주독미군 감축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직후 “한미 간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와 무역을 연계해 동맹국을 압박하는 기조를 보이는 만큼, 대미 투자 이행과 자동차 관세, 방위분담 등 현안이 다시 압박 카드로 부상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