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이상수(55)-이영호(22) 씨 부자는 어느 주말 저녁 TV뉴스에서 나온 정년연장 소식에 대해 대화하던 중 격한 언쟁을 벌이고 말았다. 이상수 씨는 “요즘 회사에 일할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문제인 데다 정년을 앞둔 사람들이 자식들 교육비로 노후대비를 못한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라고 한 마디 한 게 발단이 됐다. 곧바로 이영호 씨는 “아버지는 요즘 저 같은 청년들이 얼마나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지 모르시냐”며 “정년연장이 되면 청년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텐데 무슨 소리시냐”고 반발하면서 언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 서초구 취업지원센터에서 만난 김민수(27·가명) 씨는 채용 사이트를 ‘신입 가능’으로 필터링한 뒤 한참을 스크롤했다. 남는 공고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화면 상단에는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 3년 이상” 문구가 줄지어 있었다. 부트캠프 수료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력서에 더해도 면접장에서는 ‘유사 업계 2~3년’을 사실상 최소 조건으로 요구하는 분위기다. 김 씨는 정년연장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정년이 늘어나면 제 차례가 더 늦어지는 것 아니냐”고 날카롭게 되물었다.
#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서 만난 박정호(59·가명) 부장은 인사팀으로부터 ‘정년연장 시범 적용 검토’ 메일을 받았다. 임금피크 전환과 멘토·감독 역할 전환 가능성이 함께 적혀 있었다. 박 부장은 “연장이 되면 노후 불안은 줄겠지만 팀 생산성을 고려하면 주니어를 키울 시간과 인력이 빠듯하다”고 했다. 그는 퇴근길에 업무 매뉴얼을 손보며 “오래 남는 이유가 빈자리를 막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남기는 것이 되도록 하자”는 메모를 모니터 아래 붙이고 마음을 다졌다고 귀띔했다.
현재 법체계는 사업주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2016년 전면 시행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60세 미만 정년을 정했더라도 60세로 간주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정년 일괄 상향보다는 정년 도달자 재고용·고용연장 등을 묶은 계속고용 제도를 추진할 방침이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등 현장 장려책도 가동 중이다. 다만 제도 권고와 장려금만으로 기업의 직무·임금 구조가 즉각 바뀌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따른다.
실제 은퇴 시점은 법정 정년과 간극이 크다. 국가데이터처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령층 취업 경험자가 주된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 연령은 최근 52.8~52.9세 수준으로 집계됐다. 법정 정년 60세와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같은 조사에서 고령층의 희망 근로 연령은 73세 안팎으로 나타나 소득 공백이 긴 편이다. 연금 수령액도 월평균 80만원대에 머물러 생계·노후 계획의 불확실성이 높다.
반면 청년실업도 심각하다. 15~29세 청년실업률은 5%대 중후반을 오르내리고 기업들은 공개채용보다 수시·경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어 취업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주요 경제단체 조사에서도 대기업·중견기업의 수시채용 활용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신입을 뽑아 현장 투입까지 6~12개월이 걸린다. 경력 우선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