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더 바쁜 총수들, 휴식 대신 전략 구상

신동빈(왼쪽부터)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8월 광복절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가 시작됐지만 주요 그룹 총수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경영 전략 점검과 해외 현장 방문 등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와 국내 법·제도 개정 논의 등 불확실성의 전운이 감돌면서 각 그룹은 하반기와 내년도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한 구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기업 현장은 명절을 앞두고도 밝게 웃지 못하고 있다. 명절 상여금 축소가 확산하며 기업 체감 경기가 나빠졌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재계 불확실성 돌파구 마련 분주

 

최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추석 연휴에도 해외 출장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은 명절 전후로 해외 거점을 찾아 사업장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격려해왔다. 지난해 추석에는 폴란드 연구소와 가전 생산공장을 방문했으며 설 연휴에는 말레이시아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살폈다. 7월 대법원 무죄 확정 이후 현장 경영을 재개한 만큼 이번에도 해외 일정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28일부터 31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CEO 서밋 2025’ 준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팀 쿡 애플 CEO 등 글로벌 기업 수장을 초청하기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연례행사인 CEO 세미나와 연말 인사를 앞두고 인사 방향을 구상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 통상정책 변화에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이 현실화되면서 북미 생산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최근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이민당국 단속 여파도 주요 점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최근 주요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마친 만큼 연휴 기간에는 조용히 경영 현안을 점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 회장은 인공지능(AI)·바이오·클린테크 등 ‘ABC’ 분야를 중심으로 위기 대응과 신성장 동력 확보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해외 현장 점검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권오갑 HD현대 회장, 정기선 수석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은 특별한 외부 일정 없이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이번 추석 이후 본격적인 연말 인사 시즌에 돌입할 전망이다. 대부분 그룹은 9~10월 사이 내년도 사업 계획을 확정하기 때문에 맞춰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 올해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기술 패권 경쟁 심화로 인해 성과 중심의 인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추석 연휴 기간은 각 그룹이 내년도 사업 전략을 마무리하는 시기와 맞물린다”며 “총수들은 휴식과 동시에 전략 점검을 이어가며 미래 사업 청사진을 구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여금 대폭 줄어…“명절 분위기 안 나네”

 

이런 가운데 경기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명절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62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 상여금을 지급한다고 응답한 기업 비중은 60.4%에 그쳤다. 지난해 64.8%에서 4.4%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300인 이상 기업의 지급 비중은 73.9%에서 68.1%로 낮아졌고, 300인 미만 기업은 63.7%에서 59.4%로 줄었다.

 

상여금 지급 방식에서도 온도차가 뚜렷했다. 대기업은 정기상여금 중심(95.7%)이었지만, 중소기업은 별도 상여금을 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별도 상여금을 지급하는 기업조차 지급 수준을 ‘작년과 비슷하다’(89.3%)고 답한 곳이 대다수였다. ‘작년보다 많이 준다’는 기업은 7.6%, ‘적게 준다’는 기업은 3.1%에 불과했다.

 

휴무 일정은 달력 효과 덕에 길어졌다. 응답 기업 중 절반 이상(56.9%)이 ‘7일 휴무’를 선택했고, 20.1%는 ‘10일 이상’ 연휴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중소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열흘 이상 휴무’ 비중이 더 높았다. 반대로 납기 문제 등으로 불가피하게 ‘6일 이하’만 쉰다는 기업도 18.1%였다.

 

그럼에도 체감 경기는 어두웠다. 응답 기업의 56.9%가 “작년보다 경기가 악화됐다”고 답했고, “비슷하다”는 35.6%, “개선됐다”는 응답은 7.4%에 그쳤다. 특히 중소기업의 체감경기가 더 나빴다. 300인 미만 기업의 57.9%가 “악화됐다”고 답해 300인 이상 기업(49.3%)보다 비율이 높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올해 추석은 긴 연휴에도 상여금은 줄고 경기는 악화됐다는 인식이 퍼져 명절 훈풍을 체감하기 어렵다”며 “AI 전환 같은 장기 먹거리 전략에 속도를 내는 것도 당장의 기업 살림이 더 팍팍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