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아주는 명품 브랜드 샤넬 제품을 주로 소비하던 30대 직장인 여모 씨는 요즘 듀프 소비에 푹 빠졌다. 자주 쓰던 샤넬 뷰티의 립 앤 치크 밤을 대신해 다이소에서 유사한 제품을 단돈 3000원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최근에는 샤넬 안티에이징 세럼과 로션 제품을 모방한 국내 제품을 이용해보고 깜짝 놀랐다. 기능이나 퀄리티는 샤넬 제품과 견줘도 전혀 뒤지지 않는데 가격은 상당히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여 씨는 “사실 샤넬 제품이 꼭 아니어도 비슷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샤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충분히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요소”라며 “물론, 샤넬이 오리지널이지만 이런 제품만으로도 충분히 가성비 높은 만족감을 누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뷰티와 패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명품을 대체하는 이른바 ‘듀프(Dupe)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듀프는 복제품을 뜻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의 줄임말이다. 고가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이나 기능을 갖춘 저가 대체품을 의미하는데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기존 짝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품질과 디자인은 물론, 실용성까지 갖춘 대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향수에서도 비슷한 듀프 소비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중저가 SPA 브랜드 자라가 대표 주자다. 디올, 조말론, 구찌 등 수십만원대를 호가하는 향수와 유사한 향을 가진 제품을 5만원 안팎의 가격에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향수뿐만 아니라 패션 아이템에서도 자라는 듀프 브랜드로 명품 못지 않다는 소비자 인식을 얻는 대표 실제 인플루언서 채널에서는 ‘럭셔리 바이어가 말하는 자라의 실수로 만든 럭셔리 아이템’ ‘자라에서 명품향수 저렴이 찾기’ ‘명품향수 대체품인 자라 향수 추천’ 등의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 같은 듀프 소비 문화가 널리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가방인 버킨백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미국 최대 유통체인 월마트가 출시한 월킨백이 있다. 버킨백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 월킨백은 이름도 흡사한 데다 디자인도 비슷한데 불과 10만원대다. 이 상품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품절되기도 했다. 애슬레저 브랜드 CRZ요가의 레깅스도 룰루레몬의 얼라인 레깅스보다 절반 정도의 가격밖에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듀프 제품으로 큰 인기를 불러모았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나 해외 MZ세대의 달라진 소비 문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거에만 해도 짝퉁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아이콘이었다. 명품이 비싸서 비슷한 가짜 명품을 가지고 다녀도 가짜임을 숨기려 했다면 요즘은 아예 대놓고 듀프란 이름으로 자랑할 정도다. 특히 이들 MZ 듀프족들은 자신들의 소셜미디어에 소유하고 있는 듀프 제품을 버젓이 드러내놓기도 한다. 지난 2023년 미국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는 MZ세대를 대상으로 듀프 제품에 대한 인식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1%가 ‘듀프 제품을 찾는 게 즐겁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듀프를 ‘저렴이’란 표현을 쓰면서 귀엽고 재밌다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국내 뷰티 또는 패션 업계도 이 같은 흐름에 적극 호응하면서 저렴이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특히 화장품의 경우, 국내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인 데다 K-팝 등 한류와도 연결되면서 국내외 MZ 세대들 사이에서는 와이레스 같은 국내 뷰티 업체들의 제품을 저렴이로 애용하고 있다. 앞선 여 씨가 사용하는 샤넬 로션도 와이레스 제품이다. 실제 와이레스는 최근 듀프 전략으로 아예 ‘윙크’라는 라인업까지 선보였다. 샤넬뿐만 아니라 조말론, 딥티크, 입생로랭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화장품을 모방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고 있다.
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국내와 해외 MZ 세대들 사이에서 듀프는 일종의 트렌드”라면서 “합리적인 성격에 과거처럼 비싼 제품에 열광하는 것 자체가 천박하다는 인식과 함께 이런 합리적인 가격과 명품 못지 않는 기능이나 품질에 열광하는 모습이 자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