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 소년공에서 대통령… 개천에서 난 이재명, 화룡점정 눈앞

21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개천에서 용이 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공이 5200만 국민을 이끄는 국가원수로 발돋움 하려 한다. 21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의 영화 같은 입지전이다.

 

 그는 1964년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에서 5남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산에 불을 지펴 들풀과 잡목을 태운 뒤 그 곳에 농사를 짓는 화전민이었던 그의 가족은 가난에 짓눌려 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일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점, 그의 누나 둘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그에 기인한다.

 

 가족이 고향을 떠나 경기 성남시로 이사한 것도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시장통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를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시장에서 내다 버린 썩은 과일을 가족들이 나눠 먹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훗날 이재명이란 정치인이 경기도지사 시절 아이들에게 신선한 과일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어린이 건강과일 사업으로 이어졌다.

 

 아직 철도 들기 전 나이였지만 그는 성남에 오자마자 공장으로 갔다. 법적으로 공장 노동을 할 수 없는 나이였기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일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시절의 자신을 ‘이름조차 없던 소년 공돌이’라고 표현했다. 총 6곳의 공장을 전전하며 일 하던 중 손가락을 다쳤고, 프레스에 손목이 눌려 팔이 굽어졌다.

 

21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이미지. 

 

 그러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주경야독, 형설지공의 삶이었다. 노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검정고시로 중졸과 고졸 학력을 취득한 뒤 중앙대 법과대학에 생활비까지 지원받는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다니며 5·18 민주화 항쟁이 펼쳐진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됐고, 진로를 판검사에서 변호사로 바꿨다.

 

 그는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회운동에도 참여했다. 인천시와 광주시의 노동상담소장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노동·인권 변론을 맡았다. 2004년 성남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주민 발의로 만든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의해 폐기되는 일을 겪으면서 정치계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2010년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2014년 재선에 성공하는 등 재임기간 8년 동안 7000억원에 가까운 시 부채를 해결했으며 높은 공약 이행률로도 주목받았다. 2018년 민선 7기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2021년 민주당 경선을 뚫고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듬해 3월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0.73%포인트 차로 밀린 2위로 낙선했다.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고향 마을인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경로당에서 주민들이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환호하고 있다. ‘도촌리에서 난 용’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뉴시스

 

 2022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원내 입성한 그는 이어진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됐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재선,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그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 전 대통령의 파면에 앞장섰고 이번 대선의 1순위 후보로 꼽혔다.

 

 그 사이 위기도 많았다.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 등에 연루됐고 2023년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도 했다.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가 기각됐지만 그 뒤로도 그는 300회가 넘는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매주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나가야 했다.

 

 지난해 1월에는 부산에서 피습을 당하며 정치적 생명이 아닌 목숨이 위험해진 순간도 있었다. 흉기가 와이셔츠 깃에 먼저 닿으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복귀 연설에서 “법으로도 죽여 보고, 펜으로도 죽여 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대선 유세 중에도 그는 방탄복을 입고 방탄유리도 활용했다.

 

 지난달 대법원이 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재차 사법리스크에 휘말렸다. 그래도 서울고등법원이 재판기일을 대선 이후로 미루면서 대선으로의 마지막 장애물을 넘었다. 그리고 끝내 국민의 선택을 받으며 대권을 거머쥘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2017년 첫 대통령 도전이었던 당내 경선의 유세 도중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던 그의 포부가 8년 만에 현실이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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