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정보보안 관련 규제가 참 많아요. 이는 기업의 보안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요소가 아니라 투자비용의 하한선으로 작용합니다. 기업들은 정부에서 규정한 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처벌도 솜방망이죠. 외국이었으면 기업 존폐가 흔들릴 정도로 큰 사건이었을 겁니다.”
한 정보통신(IT) 업계 전문가가 바라본 SK텔레콤 해킹 사태다. 개인 정보는 사실상 공공재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소비자들도 이번 사태에는 배신감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의 유심 정보가 유출된 것은 국내 이동통신 40년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알뜰폰을 포함해 2500만명이 이용하는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 SK텔레콤에서 발생한 사고여서 더욱 충격적이다.
SK텔레콤은 1위 기업답지 않게 사고 발생 초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비자들은 “뉴스를 보고서야 사고 소식을 알았다”며 분노했고, 불안감을 상쇄할 사후 대처 방안도 미흡했다. 소비자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겠다며 유심 교체를 위해 SK텔레콤 대리점 앞에 줄을 섰고, 결국 유심 재고 부족 사태로 인해 SK텔레콤은 신규 영업이 중단됐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두 차례 청문회에 참석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영업 재개 시점이 불투명하고, 당장 삼성전자의 신형 스마트폰 갤럭시 S25 엣지 판촉도 막힌 상태다. 해킹 사고로 SK텔레콤을 이탈해 다른 통신사로 옮긴 소비자들에 대한 위약금 면제 여부도 논의해야 한다. 위약금 면제가 확정될 경우, 지금보다 가입자가 더 많이 이탈해 향후 매출에 악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3월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MWC 2025에서 열린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GLOMO) 4관왕을 차지하며 인공지능(AI) 기술 역량을 뽐냈던 SK텔레콤이다. 이러한 AI 저력을 앞세워 올해 1분기에도 준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SK텔레콤의 1분기 매출은 4조453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3.8% 증가한 5674억원을 기록했다. SK텔레콤은 이번 해킹 사고와 별개로 AI 관련 투자를 이어갈 방침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우려가 가득하다. 해킹 사고로 인한 비용 지출 및 가입자 이탈 영향이 2분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될 예정이며, 사고 원인 규명 시점도 기약이 없다.
이번 사태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정보보안 관련 정책이 개선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기업의 책임감 있는 투자를 이끌어낼 제도를 신설하고, 사고 발생 시 처벌 수위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동통신뿐 아니라 금융, 산업 전 분야에서 기업 차원의 보안 투자도 강화돼야 한다. SK텔레콤의 경우 지난해 정보보호투자액이 약 600억원으로 KT(1218억원), LG유플러스(약 632억원)보다 낮은 점을 지적받기도 했다.
업의 본질도 생각할 때다. SK텔레콤이 최근 몇 년간 AI 피라미드 전략을 추진하며 국내 AI 산업의 혁신을 부추긴 공로는 인정하지만 본업은 이동통신이다. 국내외 유망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AI 컴퍼니로 부상한 SK텔레콤이 소비자 보호 분야에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길 기대해본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