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좌파도 해봤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한 말이다. 실제 김 후보는 노동운동의 대부에서 보수정당 대선 후보까지 좌와 우를 넘나드는 정치 궤적을 그려왔다.
1951년 9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판자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970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1971년 전국학생시위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됐고, 대학 졸업장은 1994년에야 받았다.
제적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해 1세대 노동운동가로 활동했다. 1980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시절과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 과정에서 두 차례 구속됐고, 그 과정에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이재오, 장기표 전 의원 등과 1990년 창당한 민중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4년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민자당) 총재의 권유로 전격 입당하며 보수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15대부터 17대까지 신한국당·한나라당 등 민자당 후신 보수정당을 거치며 경기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데 이어 2010년 재선에 성공하며 행정가로 경험도 쌓았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기획, 수도권 통합 요금제, 경기순환버스 등이 김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김 후보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2년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나 김부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 열린 2018년 지방선거에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김 후보는 점차 강성 보수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을 벌였고 유튜브 개인 방송을 시작하며 진보 진영을 거칠게 비난했다. 2019년에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
아스팔트 보수로 활동하던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정치 무대에 다시 올랐다. 정권 출범 첫해부터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사노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8월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 후보는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과 요구를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거부한 채 국회 본회의장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꼿꼿 문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후 김 후보는 연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고, 국민의힘 경선에서 56.53%의 득표율로 한동훈 후보를 누르고 당 후보로 선출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강제 단일화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당원 투표 부결에 따라 후보 자격을 되찾았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