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워야 산다] 경직된 산업계 녹이는 ‘귀요미’ 훈풍… 갈등의 시대 속 ‘무해력’ 각광

현대차와 티니핑의 협업으로 화제가 된 ‘유스 어드벤처 2025’ 행사장 전경. 티니핑 캐릭터의 컬러로 칠해진 현대차 아이오닉5가 눈에 띈다. 현대모빌리티고양 인스타그램

 

 “여섯 살 딸아이가 하츄핑 차로 바꾸자네요.”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40대 허규찬 씨는 지난 어린이날 외동딸과 함께 집 근처인 현대모터스튜디오고양에서 열린 유스어드벤처2025를 찾았다. 인기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 제작사 SAMG엔터테인먼트와 손잡은 현대자동차가 유스 마케팅의 일환으로 지난 1일부터 체험 콘텐츠와 한정판 굿즈를 마련한 공간이었다.

 

티니핑의 캐릭터 하츄핑과 깡총핑의 색깔인 분홍색과 하늘색으로 꾸며진 현대차 전기차 아이오닉5가 전시된 자리는 가장 인기 있는 포토스폿이자 아이들의 성화에 부모가 진땀 흘리는 장소가 되고 있다. 허 씨는 “일단은 전시가 끝날 때까지는 살 수 없는 차라고 딸아이를 달랬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달 1일 행사 종료 이후에도 티니핑 차량의 출시 계획은 없다는 것이 현대차 관계자의 말이다.

 

유스 어드벤처 2025 행사장에서 한정판 컬래버 굿즈를 한 가득 구매한 가족(왼쪽)과 체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아의 모습. 현대모빌리티고양 인스타그램

 

 7일 마케팅 업계에 따르면 과거 유통 부문에 집중되었던 캐릭터 마케팅이 최근 산업계 전 영역으로 확산 중이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처럼 캐릭터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야의 업계에서도 이제는 귀엽고 말랑말랑한 느낌을 내세우고 있다. 캐릭터뿐 아니라 살아있는 반려동물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귀여움이 마케팅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국내 철강업계 대표 기업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각각 백곰과 연금술사를 모델로 한 자체 캐릭터 포석호와 연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특히 현대제철은 해당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을 출시해 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하면 다소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가 있고, 실생활과는 유리된 느낌이 있는데 정감 가는 캐릭터와 관련 굿즈를 통해서 대중과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다”며 “대외 이미지 제고 외에도 내부 임직원 간 소통에 해당 캐릭터들이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캐릭터 ‘포석호’가 들어간 5월 달력(왼쪽)과 현대제철 캐릭터 ‘연금이’ 이미지. 포스코-현대제철 인스타그램

 

 캐릭터가 아닌 실제 동물을 앞세우는 마케팅도 늘어나고 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의 증가와 SNS 발달이 맞물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끄는 반려동물, 이른바 ‘멍플루언서’와 ‘묘델’이 늘어난 영향이다. 이들은 주로 펫푸드 등 반려동물 용품 광고에 주로 등장하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업종에서도 존재감을 뽐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하나투어가 여행 챌린지 이벤트에 섭외한 묘델 ‘춘봉이’와 ‘첨지’다. 두 고양이가 주로 출연하고 이들의 보호자이자 코미디언 송하빈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언더월드)은 구독자가 128만 명에 이르며, 지난달 중순 업로드된 해당 쇼츠의 조회수는 이미 430만회(인스타그램 포함)를 찍었다. 영역동물 특성상 여행은커녕 외출도 어려운 고양이지만 오로지 귀여움만으로 뛰어난 홍보 효과를 낸 셈이다. 현대차가 얼마 전 공개한 캐스퍼 일렉트릭 홍보 영상도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스핀 고양이’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활용하며 화제가 됐다.

 

구독자 128만명을 자랑하는 유튜브 채널 언더월드의 주인공 ‘춘봉이’와 ‘첨지’. 언더월드 인스타그램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소환 중인 캐릭터와 반려동물은 고전적 광고 기법인 3B 법칙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광고에 3B, 아기(Baby)∙미녀(Beauty)∙동물(Beast)이 등장하면 성공한다는 법칙이 오늘날 사회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며 “출산율 저하, 성 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 등으로 아기와 미녀 카테고리는 줄고 그 자리를 반려동물과 캐릭터가 메워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무해력’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증가 역시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올해 소비트렌드를 전망한 책 ‘트렌드 코리아 2025’의 키워드 중 하나인 무해력은, 해로움이 없다는 뜻의 ‘무해하다’에서 파생한 신조어다. 작고 귀엽고 순진할 뿐 그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는 존재를 원하는 경향이 소비 패턴에도 적용되고 있다. 

 

이 같은 무해력의 부상은 곧 우리 사회에서 세대별·성별·지역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더 이상 갈등에 휘말리기 싫은 현대인은 그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는 귀여움에 가치를 둔다. 이 평론가는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는 유튜브 영상이 큰 인기를 끄는 시대이지 않은가”라며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무해함을 추구하는 경향도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