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대한민국] 계엄 후 4달 동안 지옥맛본 자영업자들 “이제 좀 나아질까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치적 혼란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거리 곳곳의 자영업자들은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자영업자들에게는 지금부터가 복구의 시작이기도 하다.

 

 헌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4개월 가까이 이어진 계엄 및 탄행 정국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파는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의 일상에 각인됐다. 그 사이 누군가는 폐업을 택했고, 누군가는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가게를 내놓기로 결정했다. “정치는 원상복구됐다지만, 내 장사는 언제 원상 복구되나” 한숨 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향후 대선을 앞두고 집회와 시위가 이어질 가능성도 남아 있는 데다 내수를 살릴 새로운 정책 추진 등 정치 변화는 이제 시작됐기 때문이다.

소기업·소상공인공제인 노란우산의 폐업 공제금 지급 상황을 보면 최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체감된다. 계엄 선포 이후 지난 1월 지급건수는 1만 2633건, 2월도 1만 477건에 달했다. 2월에 1만 건을 넘긴 것은 통계 집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2월 지급액은 1434억원으로 지난해 2월(115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사진은 삼각지 상가 거리. 김용학 기자

 헌재가 자리한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일대는 조금씩 나들이객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예전 모습을 찾아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예년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안국역 인근의 카페 사장 A씨는 “계엄령 이후 우리뿐 아니라 장사가 안돼 너무 힘들었다. 탄핵이 됐으니 우리도 이제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탄핵 이전에 대해 “불안하니까 사람들이 외식을 아예 안 한다. 밥값도 아끼는데 커피나 디저트는 오죽할까. 내수경제도 침체된 상황에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부터 눈에 띄게 매출이 줄고 있다고 회고했다. 특히 이 카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던 관광객들은 거의 사라졌다. A씨는 “우리 가게는 관광객 장사가 매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시위가 계속되니 외지 손님이 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헌재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또 다른 상인은 “계엄도 문제였지만, 워낙 경기가 안 좋다”며 “손님이 없으니 음식 만들기도 겁난다. 장사라는 게 결국 분위기인데, 지금은 그게 다 무너진 것 같다”고 푸념했다. 최근에는 시위를 마치고 온 손님 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도 언급했다.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시위도 직격탄이었다. 그동안 대규모 집회는 서울 광화문이나 여의도, 용산구 한남동 등에서 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올해는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있는 마포구 공덕동 일대 등에서도 집회가 이뤄졌다. 이들 지역 인근 호텔 로비는 물론 카페들도 화장실을 점령당했다.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 직원은 “시위 때는 특별히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화장실만 이용하는 손님도 많았다”며 “매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카페 청소만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장님도 곤란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헌재 결정으로 탄핵이 이뤄진 만큼 일각에서는 자영업자들의 형편이 좀 나아지지 않겠나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큰 기대는 안한다. 그냥 진짜 죽지 못해 버티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같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소기업·소상공인공제인 노란우산의 폐업 공제금 지급 상황을 보면 최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체감된다.

 

계엄 선포 이후 지난 1월 지급건수는 1만 2633건, 2월도 1만 477건에 달했다. 2월에 1만 건을 넘긴 것은 통계 집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2월 지급액은 1434억원으로 지난해 2월(115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이뿐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폐업 신고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소상공인 업계는 실제 폐업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헌재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경제적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정치적 열기를 이제 경제 회복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장의 개선을 기대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적인 혼란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앞으로 치러질 대통령 선거가 또 다른 불확실성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일단 대선이 빨리 끝나야 뭔가 다시 움직이지 않겠냐”고 전망하고 있다.

 

 정국이 안정되더라도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금세 나아지긴 어렵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오랜 경기 침체가 일상을 잠식했고, 매출 회복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에 가까운 상태다.

 

 마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경제를 살릴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가 아닌 생계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이에 대해 “정치 자체보다도 내수 침체, 관세, 환율 같은 다양한 변수들이 자영업에 영향을 준다”며 “형편이 나아지려면 단순한 정국 안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경기부양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돌아올 손님, 다시 켜질 가게 불빛을 기다리는 이들 앞에 “이제 좀 나아질까요”라는 조심스러운 질문만 맴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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