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는 우리나라의 자랑이다. 한지는 고려인삼과 함께 신라지, 고려지로 불리며 우리나라 대표 특상품으로 해외에서도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역시 한지로 제작된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지가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각종 디스플레이의 등장으로 종이 자체가 급속도로 잊혀 가고 있지만 글로벌 미술 복원 시장에서 한지는 한류를 이끌고 있다. 10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만나본 르코지의 김성중 대표는 한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인물이다.
◆루브르에서 먼저 알아본 한지
세계적인 박물관인 프랑스 루브르 내부 복원실에는 예술품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그림과 조각상은 물론이고 백자까지 모든 예술품을 복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재료는 종이다. 화학성분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종이를 통해 빈틈을 메우거나 복원지로 활용된다. 복원지는 습도를 조절해주면서 작품을 고스란히 고정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그 대신 화학성분이 섞인 종이는 작품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거 루브르는 일본의 화지(和紙)를 주로 사용했지만 화학성분이 섞이지 않은 전통방식 그대로 제조되는 한지의 우수성을 알게 되면서 주문을 늘려나갔다. 한지는 2016년부터 루브르에 수출되면서 2017년 막시밀리안 2세 책상의 손상된 손잡이 복원, 로스차일드 컬렉션 판화 복원에도 활용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프라고나르 등 유수의 작품들 복원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복원시장에서 여전히 한지는 일본의 후발주자로 분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대표는 “세계 복원시장이 갈수록 커지는데 우리나라 한지 점유율이 약 0.1%밖에 되지 않고 일본 화지가 99.9%를 차지하고 있다”며 “종이를 외발뜨기 방식으로 수제작 하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지만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지의 우수성 알리는 데 ‘전력투구’
김 대표는 걸어 다니는 문화 외교관이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과 협업 경력이 있는 김민중 복원가와 함께 현장에서 일하면서 특출난 감각을 키워왔다. 1978년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하고 반환하는 데에 인생을 바친 故 박병선 박사와 2008년에 처음 만나 직지문화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당시 외규장각 관련 고문서 번역 및 로즈 제독이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보낸 편지 분석 등이 주 업무였다. 결국 2011년 의궤 297권이 영구대여 형식으로 대한민국에 반환될 수 있도록 일조했다.
또한 일본의 화지가 전 세계 미술품 복원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도 한지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기도 했다. 그 결과 2017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복원용 종이로 우리의 한지를 채택하면서 천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는 한지의 특성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김 대표는 국내 약 20여 곳의 종이 생산자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10∼20회씩 방문해 모든 과정을 점검하고 프랑스에 가져가서 원심분리기까지 동원해 검증을 펼치기도 했다. 그 결과 원료부터 제작법까지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생산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해외 유명 작품을 복원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재료인 한지를 공급한다는 것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며 “한류가 글로벌 문화로 갈수록 위상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지는 한국문화가 널리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주체 중 하나”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과 파리 루브르의 공동 국제 전시회인 ‘종이 이야기’를 추진하기도 했다. 루브르뿐만 아니라 기메 국립아시아박물관, 프랑스 국립 도서관, 뽕삐두 센터의 소장품 중 주요 문화재를 한 자리에 모아 볼 수 있는 귀한 전시였다.
그는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면서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와인 수입사업도 펼치고 있다. 쟈끄셀로스∙빈센트샬롯트∙엘리안들랄로 등 프랑스 유명 샴페인 등을 한국에 알리고 있다. 즉, 프랑스에는 한지를, 한국에는 샴페인을 알리는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종이와 와인은 만들어내는 방식이나 장인 정신도 비슷하고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닮아 있어서 둘을 항상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고 있다”며 “올 초부터 프랑스 현지에서 종이를 소개할 수 있는 자그마한 아틀리에를 열었는데, 종이로 작업한 한국 작가의 작품도 소개해 한지를 더욱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지를 유네스코에 등재해 우수함 알려야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로 기원후 2∼6세기 삼국시대부터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지 제조방법은 닥나무를 쪄서 두들기고 뜨고 말리는 등의 총 99회 과정을 거친다. 이후 마지막 100번째로 만져 완성한다고 해서 백지로 불리기도 했다. 품질 및 보존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의 화지와 중국의 선지에 밀리면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루브르를 필두로 예술품 복원지로 주목 받으면서 한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지의 유네스코 등재 여부는 2026년 12월쯤 열리는 제2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종이를 만들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떼로아(기후 및 자연환경)를 모방할 수는 없다”며 “한반도에서 약 2000년 동안 종이를 만들기 가장 좋은 기후가 북한으로 올라갔다가 남한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종이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중간에서 잘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중간자 역할이 중요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거의 유일무이하다. 한지라는 것이 그동안 사양 산업이었는데 복원을 통해 가치가 있는 곳에서 사용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의 전망에 관해 김 대표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예술 작품을 고려했을 때 복원시장은 무한하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