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쾅!” 굉음과 함께 벌겋게 달궈진 거대 쇳덩이가 프레스에 두드려졌다. 신화 속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이 21세기 기술의 힘으로 되살아난 듯했다.
1200℃까지 달궈진 쇳덩이는 버스 한 대 만한 크기로, 100m가량 떨어진 곳까지 후끈한 열기를 전했다. ‘망치’ 역할을 하는 프레스와 ‘집게’ 격인 매니퓰레이터가 쇳덩이를 두드리고 돌리고를 반복하자 울퉁불퉁하면 쇳덩이 겉면이 판판하게 다듬어졌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창원 단조 공장에서 신한울 3∙4 주기기 중 하나인 ‘증기발생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15일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에너지 설비의 메카로 불리는 창원공장에서 프레스투어를 진행했다. 풍력, 터빈·발전기, 원자력, 주조·단조 공장이 등 일반인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국가 기간 산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초대형 플랜트 설비가 이곳 창원공장에서 제작된다.
전체 면적은 430만㎡(약 130만평)로 축구장 660개, 여의도의 1.5배 규모를 자랑한다. 소재 제작부터 완제품까지 일괄생산이 가능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프레스투어는 창원공장 내에 있는 ▲풍력공장 ▲터빈공장 ▲원자력공장 ▲단조공장을 둘러보는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날은 ‘신한울 3·4주기기 제작 착수식’이 단조공장에서 열림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 기기 중 하나인 ‘증기발생기’의 단조 모습이 시연됐다.

◆5.56㎿ 풍력발전기로 3천세대 전기 공급
두산에너빌리티의 풍력사업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 2000억원 R&D 투자로 자체 기술 개발 및 원천기술을 확보, 외산에 의존하던 풍력발전기 산업에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회사 측에 따르면 국내 중소 부품업체와의 동반성장을 통해 부품 국산화율 70%를 달성했다.
풍력발전기는 ▲블레이드(Blade) ▲허브(Hub) ▲나셀(Nacelle) 3개 파트로 구성된다. ‘블레이드’는 바람에너지를 회전에너지로 전환해주는 일종의 날개고, ‘허브’는 블레이드로부터 전달된 에너지를 증속기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나셀’은 풍력발전시스템의 주요 구성품이 배치된 공간이다.
창원공장에는 풍력1공장과 2공장이 존재하는데, 이날 공개된 2공장에서는 각각의 파트들이 제작·조립되고, 1공장에서는 성능테스트가 이뤄진다.
신동규 파워서비스BG 풍력·서비스설계 담당 상무는 “주요 제품으로는 3㎿, 3.3㎿, 5.56㎿, 8.0㎿가 있다”며 “5.56㎿ 경우 블레이드 직경만 140㎝로, 약 3000세대에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제작 중인 한림해상풍력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98기, 347.5㎿의 풍력발전기를 제작 공급했다”며 “국내 최초 해상풍력 단지인 탐라해상풍력(30㎿), 서남해해상풍력 1단계(60㎿) 등 국내 해상풍력 최다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합터빈으로 2차 발전 가능
터빈공장은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에 공급하는 초대형 ‘터빈’과 ‘발전기’를 만드는 곳이다. 원자력 발전소용 1400㎿급 초대형 증기터빈과 LNG 발전소용 대형 가스터빈·증기터빈, 원전과 LNG 발전의 대형 발전기 등이 주요 생산제품이다.
가스터빈 공장은 축구장 하나 크기로 10년에 걸쳐 완공됐다. 약 4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날 프레스투어에선 완성된 가스터빈 모습도 공개됐다.
가스터빈은 쉽게 말해 가스를 압축 및 연소해 터빈을 가동시켜 에너지를 얻는 것을 말한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는 ‘복합터빈’ 형태를 선보였는데, 제너레이터를 통해 1500℃의 고온고압 가스에서 1차 발전을 하고, 냉각 기술로 스팀터빈을 통해 2차 발전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황현상 파워서비스BG TM생산 담당 상무는 “가스터빈에 이어 수소터빈도 개발하고 있다”며 “LNG 연소하는 가스터빈에 수소 연소가 가능한 연소기를 부착하면 되는 것으로, 지난해 수소터빈 연소기의 30% 혼소 시험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 국책과제로 50% 수소 혼소 및 수소 전소 연소기를 동시에 개발 중이다. 이에 따라 오는 2027년 380㎿급 수소 전소 터빈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핵심 기기인 수소 전소 터빈용 연소기를 2026년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원자력공장, 신한울 3·4 주기기 제작 착수
원자력공장에서는 발전소에 들어가는 핵심 주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제펌프 등이 제작된다. 일반적으로 원자력 공장은 2개의 돔으로 이뤄지는데, 돔 1개당 원자로 1개·증기발생기 2개가 위치한다.
원자력공장의 대표 제품인 한국 표준형 APR1400 원자로는 높이만 14.8m, 직경 5.5m에 무게가 무려 533톤에 이른다.
이동현 원자력BG 원자력공장 공장장은 “원자로는 규모도 크지만, 머리카락 한올 만한 흠결도 용납되지 않는 정교한 기술의 결정체”라며 “현재까지 원자로 34기, 증기발생기 124기를 국내외 대형 원전에 공급했다”고 말했다. 또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준공된 UAE 바라카 원전에는 주기기를 공급했으며, 신한울 3·4 주기기도 제작에 착수했다.
아울러 최근 전세계적으로 SMR(소형모듈원자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만큼 두산에너빌리티는 추후 SMR공장을 부지 내 별도로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창원=김진희 기자 purp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