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아픈 명품백 되살리는 ‘종합병원’, 월드리페어 찾아보니

김춘보 월드리페어 대표
가방 제작하다 2008년 창업
배범준 이사 등 수선 장인 보유
명품 수선·리폼 7만 5000건↑
“크리닝부터 꼼꼼한 작업 구현
사설 업체 대한 불안감 해소
상장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어”

김춘보 대표(사진 오른쪽)와 배범준 이사가 명품 수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경기 구리, 글·사진=정희원 기자] “브랜드에서 어렵다는 가방 수선, 월드리페어로 가봐.”

 

전세계적으로 명품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 너무나 익숙해진 백화점 ‘오픈런’ 풍경, 브랜드 선호 분위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듯하다.

 

전세계적으로 명품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명품 3대장 ‘에루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20∼40%대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명품은 말 그대로 명품. 한 철 가볍게 쓰는 게 아니라 대부분 오래 일상을 함께한다. 최근에는 3대를 이어가는 사례도 적잖이 볼 수 있다. 브랜드 가치에 추억이 더해지면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거나, 피치 못한 사정으로 가방이 망가졌을 때다. 가족이 아프면 마음 쓰고 돌보듯, 아끼는 가방이 상했을 때 방치하지 않고 ‘가방 병원’으로 보내주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김춘보 월드리페어 대표는 아픈 전국, 심지어 해외의 가방들을 돌봐주는 존재다.

 

명품 수선은 크게 ▲수선 ▲리폼 ▲케어 ▲염색 등으로 이뤄진다. 월드리페어 역시 가죽 전체를 교체하거나, 명품백을 원하는 모양으로 리폼하거나, 오래된 가죽을 다시 새것처럼 염색하는 작업 등을 주로 시행하고 있다.

 

김춘보 대표는 10대 시절부터 40년 가까이 가방·가죽과 함께해온 이 분야의 ‘명장’이다. 1989년 남이교역 핸드백 생산을 시작으로 MCM·메트로시티·샘소나이트·닥스·랑방 등 굴지의 브랜드 가방을 생산했다. 이후 2008년 월드리페어를 설립했다. ‘세상의 모든 가방’을 만져보고 싶다는 의지에서였다.

 

김 대표는 가방 몰딩은 기본, 가방의 꽃이지만 기술자가 부족한 핸들 기술 면에서도 ‘톱 급’이다. 현재도 국내 수많은 브랜드와 백화점이 월드리페어로 수선을 위탁한다.

 

2일, 경기도 구리시 월드리페어를 찾아 김춘보 대표이사(50)와 배범준 이사(42)를 만나 ‘명품 수선의 세계’에 대해 들었다. 배범준 이사 역시 20년 경력을 보유한 이 분야의 젊은 장인으로 꼽힌다.

 

김춘보 대표에 따르면 여름철 휴가가 끝난 시점부터 3월까지는 말 그대로 명품 수선업계의 성수기다. 특히 휴가 직후에는 바닷물 등 휴양지에서 빠졌다가 어렵게 돌아온 가방들도 적잖다.

 

이날 현장에서 직원 15명은 가방을 돌보고, 손님과 상담하며 응대하고, 기업에서 켜켜이 쌓아온 보내온 가방들을 확인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장인들이 미싱, 가죽을 재단하는 기기 등을 다루며 낡은 가방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회사가 한 달에 소화하는 수선 물량만 800~1000여개. 최근 명품 수요가 커지며 더 바빠지고 있다. 넘쳐나는 물량에 매일 오전 7시면 오픈하고 토·일요일 주말도 없이 일한다.

 

실제로 명품 가방 수선을 브랜드가 아닌 전문 업체에 맡기는 소비자가 점점 증가세다. 명품 커뮤니티에서도 브랜드 AS에 대한 불편함과 서비스 받기까지의 고단함에 대해 토로하는 글이 많다.

 

간단한 수선이라도 해외 본사에 제품을 보내야 하고, 부품이라도 없으면 기간은 더 길어져 번거롭다. 대다수 브랜드가 국내서 수선을 전담하는 인력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어서다. 결국 브랜드에서의 만족스럽지 못한 AS 경험에서 ‘잘하는 명품 수선집’을 찾게 만드는 것.

 

배범준 이사는 이같은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 자체의 하자가 있는 경우, 또는 규격 내에서 수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제품을 구입한 브랜드 쪽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규격 외’ 수선을 요구한 경우라면 피곤해진다. 예컨대 키가 작은 손님이 크로스백을 구입한 뒤 자신의 키에 맞게 살짝 어깨끈의 길이를 줄여달라고 하는 경우, 브랜드는 대부분 거절한다. 최초의 형태에서 약간의 변형조차 허용하지 않는 셈이다. 배 이사는 “이런 수선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브랜드 운영 상 처리가 어렵다”며 “이같은 사소한 문제를 해소하려는 고객들도 자사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김춘보 월드리페어 대표, 월드리페어 제공

김 대표는 월드리페어의 수선 작업 시간은 다른 업체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정성을 많이 쏟는 탓이다. 수선이 완료되기까지 보통 2~3개월이 걸린다.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만든다.

 

김춘보 대표는 “가장 고치기 난감한 케이스는 바닷물에 빠진 가방”이라며 “그 중에서도 가방 안감 속 본드가 가죽을 뚫고 나오는 경우”를 꼽았다. 그는 “가방 내부에서 본드가 끈적거리는 정도라면 다시 뜯어서 개선할 수 있지만, 이미 본드가 가죽 외부로 뚫고 나오면 소생이 어렵다. 염색을 해도 끈적거림이 남는다”고 말했다.

 

수선 퀄리티를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서도 물었다. 매 시즌 새로운 백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모두 관리하는지 궁금했다. 김 대표와 배 이사는 모두 ‘관건은 일단 많은 가방들을 만져보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단 신상 나오면 가방을 구입해 해체부터 해본다. 가죽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도록 수술용 ‘메스’를 활용해 분해하고 만들어진 방식을 살펴본다. 배 이사는 “시즌마다 소재가 바뀌는 경우도 많고, 새로운 안감 소재가 끊임없이 나오다보니 많이 봐야 한다”며 “그렇다고 모든 라인의 가방을 살 수는 없다. 업계에서 오래 된 사람들은 한눈에 ‘이 가방 뜨겠다’는 촉을 받는다. 이런 모델 위주로 살펴본다”고 했다.

 

 어떤 지역에서 가장 많이 찾을까. 서울 강남이 아닌 ‘전라도 지역’이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연속 거래량도 많다. 배범준 이사는 “지방에서 찾아주는 고객이 훨씬, 압도적으로 많다”며 “전라지역에 이어 2위가 서울 강남이다. 3위는 경기 지역”이라고 했다.

 

명품 선호 현상과 함께 개인의 중고거래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의 리셀(재판매), 렌탈 서비스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분명 명품 수선업계에도 호재다.

 

김춘보 대표는 리셀이 활성화되는 것은 곧 수선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관련 업체가 늘다보니 B2B가 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명품 수리·수선은 단순히 고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전 상태로 돌리다시피 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 필수다.

 

 명품 수선은 단순히 고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전 상태로 돌리다시피 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 필수다. 김 대표가 이를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보는 이유다. 그는 “향후 수선·케어 시장은 더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며 창업 14년만에 명품 수선·리폼 건수는 무려 7만 5000건을 돌파했다.

(사진 왼쪽부터)월드리페어 대표 명장인 김연종 전무, 김춘보 대표, 배범준 이사가 명품 가방을 수선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김춘보 대표는 “고가의 가방을 구입한 뒤 브랜드가 아닌 사설 업체에 수리를 맡기는 것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을 이해한다”며 “이와 관련 ‘정성스런 표준화된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디서든 보기 힘든 서비스를 구현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실력은 기본이다. 김 대표나 배 이사뿐 아니라 이곳 임직원들은 10년 이상 이직하지 않고 명품 리폼, 수선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퀄리티를 위해 제품별 동일한 가죽을 구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일반적인 수선을 할 때에는 보통 문제 부위만 케어하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우선 형태를 살려주고, 보강재를 덧대주는 데다가, 전체 크리닝도 해준다. 

 

 배 이사는 “기업 고객의 경우 ‘월드(리페어)에서 나오는 가방은 검수 없이 그냥 보내도 된다’는 피드백을 하는데, 무척 감사하다”며 “연말 약속을 앞둔 이 시기, 수선 소개가 굉장히 많을 때”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대기업에서의 ‘러브콜’ ‘찔러보기’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 사업을 시작하지 않은 명품 회사에서도 제휴하자는 연락을 보낸다. 월드리페어는 상장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김춘보 대표는 “소규모 공방, 가내 수공업 형태를 넘어 고객들에게 표준화된 서비스 제공하도록 기업화했다. 고객들이 처음 명품 소장 했을 때의 느낌과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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