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기자] 최근 일본 도쿄 롯본기서 열린 ‘세일러문 30주년 전시회’에서 독특한 부츠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바로 럭셔리 브랜드 지미 추가 선보인 ‘달의 요정 세일러문’의 부츠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니하이부츠는 채도 높은 푸시아 컬러에 스와로브스키 1만 9000개를 더해 선보였다.
4일 지미 추에 따르면 이는 모두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속 세일러문이 당장이라도 신고 나올 것 같은 리얼한 비주얼이다.

세일러문 ‘덕후’ 소비자라면 부츠를 구입할 수도 있다. 지미 추는 오는 9월 15일까지 부츠를 주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정판 MTO(made-to-order, 특별 주문 제작 서비스로 선보여질 예정이다. 한 켤레에 약 1만5000달러(한화 약175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배송은 2023년 2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면 된다.

지미추에 이어 스포츠·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반스도 세일러문 컬렉션을 내놨다. 글로벌 패션업계가 세일러문에 주목하는 이유는 올해가 만화가 태어난 지 30주년이기 때문이다.
반스는 의류, 가방, 신발 등 다양한 세일러문 아이템을 선보였다. 세일러문의 상의에서 영감을 받은 플리스, 세일러문 캐릭터가 그려진 후디·티셔츠 등.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각각 출시됐다. 세일러 전사들과 등장인물들이 그려진 스니커즈와 슬라이드(슬리퍼)도 다수 나왔다.
각각의 제품에는 세일러문의 변신 브로치와 리본 프린팅, 세일러 전사를 상징하는 행성 장식 등이 골고루 담겼다.

애니메이션과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는 2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레트로’를 넘은 ‘뉴트로’ ‘Y2K’ 문화가 성행한 것과 연관이 깊다.
초기에는 힙스터들의 문화로 여겨졌지만, 브랜드들은 콜라보레이션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국내서는 올해 2월 SPC삼립이 내놓은 포켓몬빵이 ‘대박’을 치며 추억 마케팅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이와 관련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던 만화와 협업하는 브랜드가 증가하며 관련 콘텐츠가 대거 쏟아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까지 애니메이션 콜라보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는 어릴 적 애니메이션을 즐기던 세대와 힙한 문화를 찾는 MZ세대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90년대 애니를 즐기던 세대는 30대에 접어들며 경제력이 높아졌고, 레트로 문화를 검색해 즐기는 10∼20대 모두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통업계 전반에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추억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며 “패션업계도 익숙한 글로벌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찌가 미키마우스와 도라에몽을, 마크 제이콥스는 피너츠 속 스누피와 친구들을 브랜드에 녹이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로에베는 과거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들과 콜라보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기존 세대가 가진 캐릭터에 대한 애정못잖게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반응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당시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1020세대 사이에서 협업 제품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명품업계에서 일본·미국 애니만 나오는 건 아니다. 국내서 1985년부터 연재된 이진주 작가의 ‘달려라 하니’도 올해 초 JW앤더슨과 협업하며 화제가 됐다.
JW앤더슨은 지난 2월 인스타그램에 22FW 시즌에서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하니가 컬러풀하게 그려진 가방과 의류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시태그 #runhany를 함께 게시하며 범퍼백 등 콜라보 백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첫 명품브랜드와의 콜라보다.

업계 측에 따르면 브랜드 측은 지난해 11월 JW앤더슨에서 달려라 하니 이미지를 발견하고 작가를 수소문했다. 이진주 작가에게 하니의 이미지를 사용한 샘플 사진을 보내며 콜라보가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가는 혹시 하니의 머리가 금발로 바뀔까봐 머리색은 검정색과 짙은 갈색, 두 가지만 사용할 수 있게 했다고.
조나단 앤더슨은 이에 대해 “콘텐츠는 콘텐츠가, 이미지는 그림의 그림이, 패션은 경관의 일부가 된다”며 콜라보에 나서는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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