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동기획
“가만히 있다간 내 아이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사회적 조바심 속에서 많은 가정이 매달 고액의 원비와 가계의 가용 자원을 쏟아붓는 부담을 묵묵히 감내해 왔다. 통장과 일상을 쪼개가며 사교육 문을 두드리는 과열의 이면에는 영유아기의 신체·정서적 발달 특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일찍 시작할수록 앞서간다”는 통념이 굳어지면서 뇌가 채 성숙하지 않은 영유아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학습량을 밀어 넣는 일이 당연시된 탓이다.
여기에 부모의 불안 심리를 정조준한 시장의 왜곡된 학습 정보와 과장광고가 기름을 부었다. 맘카페와 온라인 플랫폼 등 특정 시기를 놓치면 평생 뒤처진다는 공포 마케팅이 범람했고, 화려한 원어민 발음이나 단기 진도를 앞세운 상업적 마케팅이 조기 사교육을 ‘필수 코스’처럼 둔갑시켰다.
그러나 온 가족의 자원을 쏟아부어 단기 진도를 앞당긴 조기 선행의 효과는 취학 이후 깊은 문해력이나 문제해결력, 장기적인 학업 성취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 국내외 실증 연구를 통해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국 영유아기 뇌 발달에 필수적인 놀이와 휴식의 기회비용을 치르며 발달권과 행복권을 침해당하는 구조를 더는 개별 가정의 몫으로 남겨둘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불안을 부추기는 사교육 환경을 바로잡고 사회적 인식 개선과 공적 돌봄 대안을 맞물린 구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꼼수 선발’ 묶고 과징금 물린다…교실 앞 줄세우기 퇴출
그간 영유아 학원가에서는 네살, 다섯살 아이들을 상대로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반을 가르는 식의 줄세우기가 성행하며 학부모의 조바심을 부추겨 왔다. 시험지를 풀지 않더라도 교사가 질문을 던져 맞고 틀림을 따지는 구술 평가나, 타 학원 수강 이력·공인 어학 점수를 요구하는 우회적 선발도 만연했다.
이에 개정 학원법은 유아를 모집하거나 수준별로 배정하기 위한 시험·평가를 금지한다. 다만 등록 이후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 교육활동 지원 목적으로 실시하는 관찰·면담 방식의 진단은 허용된다. 한편 교육부는 36개월 미만 영아를 대상으로 한 강사 주도형 인지교습을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취학 전 유아에게는 1일 3시간·주 15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인지교습을 제한하는 추가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교육부는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매출액의 50% 이내 과징금 도입과 과태료 상향 등 경제적 제재 강화도 추가 법령 개정 과제로 제시했다. 위반으로 얻는 이익보다 제재 비용이 낮아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그동안 초·중·고교와 달리 영유아 사교육은 공식 국가 통계조차 없어 실태 파악이 깜깜이에 머물렀던 문제도 바로잡는다. 정부가 올해부터 사상 첫 유아 사교육비 본조사를 실시하고 2027년 3월 국가승인통계 공표를 추진하는 이유다. 몇세부터 지출이 기형적으로 치솟는지, 어느 과목으로 불안이 쏠리고 가계 소득별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는지를 공적 데이터로 정밀 추적해 뜬구름 잡는 규제가 아닌 현장 밀착형 중장기 대책을 세우겠다는 취지다.
◆‘돌봄 공백’이 부른 사교육 의존… 공공 돌봄 확충·인식 개선 ‘투트랙’
현재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찾는 현실적 배경에는 정규 교육시간 이후 발생하는 돌봄 공백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역과 가정 여건에 따라 유치원·어린이집 기본과정 이후 이용할 수 있는 공적 돌봄 선택지가 부족해, 일부 가정은 사교육을 돌봄의 대안으로 활용해 온 탓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0∼2세 표준보육과정과 3∼5세 누리과정, 초등 교육과정의 연계를 강화하고, 특히 5세 유아의 안정적인 초등 전이를 돕는 이음교육을 확대한다. 아울러 독서교육과 예술·체육·언어 분야의 방과후 프로그램, 아침·저녁·방학 중 틈새돌봄과 시간제 보육을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이를 학원에 맡기지 않아도 공적 교육·보육 체계 안에서 발달에 맞는 교육과 돌봄을 온전히 누리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전문가들 역시 사교육 의존을 줄이기 위한 핵심 열쇠로 돌봄의 공적 확충을 꼽는다. 정선아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해 열린 ‘7세 고시: 유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전쟁’ 정책간담회에서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가 돌봄의 공백과 얽혀 있는 것처럼 영유아 교육도 돌봄과 교육이 같이 가야 한다”고 짚었다.
현정민·주다솔 기자 mine04@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