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집값을 잡겠다고 말한다. 정부는 공급 대책을 내놓고, 국토부는 공사비 정상화와 시장 안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재건축·재개발 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보인다. 공식 회의록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브로커다.
재건축 현장에서 공사비 상승은 늘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증가, 금융비용, 고급화 설계로 설명된다. 물론 이 요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장의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숨어 있다. 철거, 창호, 마감재, 수전, 주방가구, 시스템가구, 특화품목 등 조합원이 세부 구조를 알기 어려운 영역마다 브로커가 끼어든다. 이들은 특정 업체를 연결하고, 조합 내부 인물에게 접근하며, 시공사 영업라인과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음성적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공사비가 되고, 조합원 분담금이 되고, 일반분양가가 된다.
브로커는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정비사업의 허점을 잘 안다. 어느 단계에서 조합이 흔들리는지, 어떤 임원이 영향력을 갖는지, 어떤 시공사 영업라인이 움직이는지, 어느 품목이 돈이 되는지 정확히 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들이 법도 안다는 점이다. 브로커는 누구보다 법의 전문가처럼 움직인다. 직접 돈을 받지 않고, 차용증과 용역계약서, 컨설팅 명목, 소개비, 자문료, 지분 약정 뒤로 숨는다. 문제가 터지면 “정상적인 영업 활동이었다”, “단순 소개였다”, “사업상 자문이었다”고 말한다.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로커는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 비싼 변호사를 동원한다. 수사기관이 자료를 요구하면 법률 검토를 이유로 시간을 끌고, 관련자 진술은 엇갈리게 만들며, 돈의 흐름은 여러 단계를 거쳐 희석시킨다. 핵심은 지연이다. 수사가 늦어지는 사이 시공사는 선정되고, 계약은 체결되고, 업체는 현장에 들어간다. 조합원들이 뒤늦게 문제를 알아도 이미 사업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다. 브로커에게 시간은 방패이고, 지연은 전략이다.
대통령도 무시하고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브로커는 활개 친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정비사업 현장의 불편한 현실이다. 정부가 아무리 집값을 잡겠다고 외쳐도 현장의 이권 구조를 끊어내지 못하면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 공사비가 오르면 조합원 분담금이 오르고, 분담금이 오르면 일반분양가가 오른다. 일반분양가가 오르면 주변 시세가 따라 오른다. 결국 브로커의 이권 비용이 시장 가격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이 구조는 조합원에게 가장 잔인하다. 조합원은 공사비가 왜 올랐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창호 단가가 왜 바뀌었는지, 특정 마감재 업체가 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지, 철거권 비율이 왜 조정됐는지, 누구의 추천으로 어떤 업체가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 조합원에게 돌아오는 것은 두꺼운 계약서와 늘어난 분담금뿐이다. 누군가는 뒤에서 이권을 나누고, 누군가는 앞에서 “고급화”라는 말로 포장한다.
더 큰 문제는 브로커가 정권과 무관하게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장관이 바뀌어도, 시장이 바뀌어도 현장의 브로커는 사라지지 않는다. 조합장이 바뀌면 새 조합장에게 접근하고, 시공사가 바뀌면 새 영업라인을 찾는다. 단속이 강화되면 계약 형태를 바꾸고, 수사가 시작되면 변호인을 앞세운다. 이들은 법의 빈틈과 행정의 속도를 누구보다 잘 이용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말은 쉽다. 그러나 브로커를 잡지 못하면 집값도 잡히지 않는다. 정비사업의 공사비를 제대로 보려면 원자재와 인건비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브로커 비용과 뇌물성 이권 비용을 봐야 한다. 누가 업체를 연결했는지, 누가 특정 시공사를 밀었는지, 누가 철거권과 마감재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간 돈이 어디로 흘렀는지 추적해야 한다.
대한민국 재건축 현장에서 브로커는 집값 상승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정부가 진심으로 집값을 잡고 싶다면 대출 규제나 세금 대책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정비사업 현장에 기생하는 브로커 구조부터 도려내야 한다. 수사가 늦어지는 동안 브로커는 웃고, 공사비는 오르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해권 부동산 재건축 탐사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