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장사하면서 이 정도로 일찍 문을 여는 건 처음입니다.”
32년만의 ‘오전 월드컵’이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팀의 경기에 맞춰 치킨·족발 가게와 주점 등 오후 오픈이 일반적인 매장들이 개점 시간을 앞당긴 것.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치킨·노가리 가게의 점주 A씨는 “보통 오후 3시에 문을 여는데 19일 멕시코전이 오전 10시 시작이라 9시 반에 오픈 예정이다. 집에서 8시 반에는 나와야 한다”며 껄껄 웃었다.
일반적으로 월드컵 특수를 가장 확실하게 누리는 쪽이 치킨 업계다. 경기를 기다리며, 혹은 경기를 보면서 즐기기에 치킨이 최고라는 인식 덕분이다. 특히 최근 30년 안쪽으로 따졌을 때 한국팀의 월드컵 경기가 대부분 저녁 혹은 밤에 펼쳐졌기에 한국인의 대표 야식 치킨이 ‘월드컵 먹거리’로 자리 잡은 것.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의 조별리그 경기가 전부 멕시코에서 열리면서 킥오프 기준 경기 시간이 한국시간으로 오전 10시와 11시로 정해졌다. 1994년 미국 윌드컵 이후 처음으로 한국팀의 조별리그 전 경기가 아침 시간대에 잡힌 것이다. 오전부터 치킨을 먹는 건 다소 부담스럽다는 일반적 인식에 이번 월드컵은 치킨업계는 아쉬움이 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인은 역시나 치킨의 민족이었다. 체코와 1차전이 열린 지난 12일 치킨업계가 이례적인 오전 특수를 누리며 매출이 평소의 4배 넘게 급증한 것. bhc치킨과 제너시스BBQ의 이날 오전부터 오후 1시까지의 매출액이 전주 동기 대비 4배(300%) 이상으로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BBQ는 체코전이 오전 11시에 시작한 점을 고려해 당일 앱 운영 시간과 매장 영업을 8∼9시로 앞당기는 승부수가 통했다. BBQ 관계자는 “오전 시간대임에도 일부 매장에서는 100명 규모의 단체 예약이 접수되는 등 주문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날 A씨도 “원래는 오전부터 영업을 할 계획이 아니었는데 단골손님들이 꼭 열어달라고 하더라. 장사를 안 해도 어차피 중계는 볼 거니까 손님들과 같이 본다는 생각으로 일찍 문을 열었는데 단체 손님이 3팀이나 왔다”며 “젊은 친구들은 맥주도 많이 마시더라”고 만족해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치킨 사랑을 확인한 데다 한국 대표팀의 1차전 승리로 고무된 업계는 다음 한국 경기인 19일 멕시코와 2차전을 기대하고 있다. A씨는 “계약 주류업체를 통해 2차전도 일찍 문을 열고 단체 응원이 가능하다는 팻말을 받아서 가게 앞에 붙였다”며 “2차전 결과와 관계없이 25일 오전 10시 3차전(남아프리카공화국)도 경기 시작 전 일찌감치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남 번화가에서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 B씨도 기대감이 크다. 이 매장은 인근 회사원들을 공략하기 위해 오전 11시부터 점심 뷔페도 운영하는데 2차전 멕시코전은 킥오프 시간에 맞춰 오픈 시간을 1시간 앞당기기로 했다.
B씨는 “1차전은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 손님들이 있을 정도였다”며 “그때처럼 손님들이 몰릴 것 같아 2차전은 따로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다만 오전 10시부터 영업을 시작한 적이 없어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당일이 되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가의 분위기는 더 뜨겁다. 서울 성북구의 고려대 안암 캠퍼스 인근 번화가에는 치킨집과 술집은 물론 퓨전짬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월드컵 중계를 앞세워 고객 유치에 나섰다. 대학가의 경우 상대적으로 평일 오전에도 방문객의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는 눈치다. 한 주점 관계자는 “요즘이 시험기간이긴 하지만 지난 1차전에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서 2차전도 오전부터 영업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치킨과 더불어 국내 야식 메뉴 대표로 꼽히는 족발도 월드컵 먹거리 등극을 노린다. 서울 현대차·기아 본사와 인접한 양재동 양재시민의숲역 인근 번화가에 위치한 족발보쌈 프랜차이즈 매장도 월드컵 한국팀 경기에 맞춰 개점 시간을 앞당겼다.
이 매장 관계자는 “원래 오전 11시반 오픈인데 한국 경기날은 10시 전에 문을 연다. 지난 1차전에도 단체손님들이 많이 왔다”며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대형 TV도 한 대 더 마련했다. 야외 테이블에서도 중계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오전 시간대라는 부담이 있더라도 4년에 한 번인 월드컵을 즐기자는 마음이 소비자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팀이 1차전을 승리하며 관심도가 더 커진 만큼 2차전은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업장으로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