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룰 메이커’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에너지, 인공지능(AI), 저출산 대응을 두 나라가 함께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9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에서 진행된 ‘복잡해지는 국제정세 속 한일의 지향점’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한일 간 경제협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번 대담엔 전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장인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고문, 가토 마사히코 미즈호은행 행장이 함께했다. 이날 행사는 일본 유력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하고 SK와 최종현학술원이 기획했다.
최 회장은 우선 에너지 분야에서의 한일 간 협력 방안에 대해 “중동 이외 지역의 에너지 공동개발과 첨단소재, 대체 배터리 공동연구는 물론,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래 에너지 분야에 함께 진출해 국제 표준 형성을 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 분야도 한일 간 구체적 협력이 가능한 분야로 꼽았다. 최 회장은 “미국, 중국의 기술 패권 속에서 한일이 규모의 경제와 협상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며 “데이터 공유와 공동 인프라 개발, 규범 표준화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 회장은 양국 사회의 구조적 위기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4월 출범한 ‘한일 저출산 대책위원회’를 소개하며 “민간 차원에서 육아 환경과 기업 문화, 노동시장 구조 등을 함께 연구하고 신속히 실천 모델을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최 회장은 사회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한일 협력이 규제와 표준의 차이, 단기적인 정치 상황이나 불확실성 등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두 나라 정부가 한일협력 의제를 한데 모으는 ‘빅 텐트’ 형태의 상설 플랫폼 구축을 제안했다. 최 회장은 “두 나라 정부가 기업, 학계, 청년 등 다방면의 협력 의제를 하나로 모으는 상설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서 한일협력 추진의 어려운 점을 선제적으로 논의하자”며 “협력을 어렵게 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관련 제도를 정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담에서 최 회장의 한일경제연대 청사진에 도쿠라 고문은 “두 나라 공통 과제인 에너지 자급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MR 등 차세대 혁신 원전 개발에서 협력해야 한다”며 호응했다. 가토 행장도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액화천연가스(LNG) 등에서의 양국 기업 협력을 예로 들며 “실무적 협력을 발전시켜 한일경제연대를 구체화하자”고 최 회장 제안에 힘을 실었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와 김진표 전 국회의장도 한일 우호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시다 전 총리는 “미래 지향적이고 안정적인 두 나라 관계를 위해 공급망, 에너지, AI 등의 분야에서 경제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며 “양국이 함께 겪고 있는 수도권 집중, 고령화 등의 사회문제를 푸는데도 양국 협력은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국회의장은 “시장경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은 세계적 격변기에 서로의 손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고 화답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