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로봇 관련 내용을 신규 사업에 추가하는 기업이 적잖다. 정관은 사업의 목적과 범위, 기업의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방식을 규정한 최상위 규칙으로, 정관 변경을 통해 신규 사업을 추가하는 건 새로운 분야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하지만 기존 사업과의 연관성이 떨어지거나 사업을 추진할 역량이 없으면서 정관상 신사업만 기재하는 데 대해선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S그룹 계열사인 LS에코에너지는 지난 24일 정기 주총을 열고 ‘로봇·인공지능(AI) 및 첨단산업 관련 소재, 부품, 시스템 및 응용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회사 측은 “희토류(소재) 및 전력망(인프라) 역량을 기반으로 로봇·AI 등 미래 성장 산업 진출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LS그룹에서 전선과 희토류 산업을 영위하고 있다.
같은 날 LS머트리얼즈도 정기 주총을 개최하고 ‘로봇·인공지능(AI) 및 첨단산업 관련 소재, 부품, 시스템 및 응용사업’, ‘영구자석을 포함한 희토류 소재 및 응용제품의 제조, 가공 및 판매업’을 신규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또 다른 LS그룹 계열사인 가온전선은 ‘지능형 로봇 및 액추에이터의 설계, 제조 및 판매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정관 변경의 안건을 의결했다. 액추에이터는 회전력을 만드는 모터,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드라이버, 속도를 조절하는 감속기 등을 합친 모듈로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한다. 로봇 제조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으로, 피지컬 AI 시대에 유망한 후방 산업 분야다.
IT기업도 로봇 사업에 사활을 거는 건 마찬가지다. 카카오는 인공지능 개발 및 이용업을 정관에 추가했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AI를 중장기 핵심 성장 동력으로 정의하고,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고도화 및 신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AI 기술 기반 서비스 고도화 및 신규 사업에 따른 목적 추가”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올해 두 개의 핵심 서비스인 ‘챗GPT 포 카카오’와 ‘카나나인톡’을 중심으로 이용자 기반을 확대하고, 반복 사용을 유도해 카카오톡 플랫폼 내 AI 트래픽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정수기 등 생활 밀착형 기업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코웨이 역시 오는 31일 주주총회에서 ‘로봇 제조·판매·임대·서비스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앞서 쿠쿠홈시스는 지난 26일 정기 주총을 열어 ‘프랜차이즈 및 식음료 산업 관련 로봇 솔루션 제공업’, ‘자동조리로봇의 판매, 유통, 설치 및 유지보수(유상수리) 서비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승인했다.
디스플레이 부품 및 장비, 2차 전지 제조장비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파인텍은 지난 27일 진행한 주총에서 신규 사업목적에 ‘지능형로봇 제조 및 판매업’, ‘지능형로봇 부품 제조 및 판매업’, ‘공공서비스로봇 제조, 판매업 및 서비스업’, ‘산업용로봇 제조 및 판매업’, ‘로봇부품 및 부분품 유통업’을 추가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서진오토모티브는 오는 31일 주총을 개최하고 정관 변경을 통해 신규 사업목적에 ‘로봇 하드웨어 및 로봇 시스템(본체, 구동부, 제어장치, 센서 등)의 제조 및 판매’를 추가할 예정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 실제 사업추진 가능성은 희박한데도 특정 테마에 편승해 정관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직·인력 구성 개편, 연구개발활동 내역, 제품·서비스 개발 진행 상황, 실제 매출 발생 등이 없는 경우가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금융감독원이 2023년 중 2차전지 등 7개 주요 신사업을 추가한 기업 86곳을 대상으로 실태분석을 한 결과, 27곳(31%)은 사업추진 실적이 전무했다. 매출까지 발생한 회사는 전체의 20%도 채 되지 않았다.
한 예로 쿠쿠홈시스는 1년 전 주총에서 ‘서빙로봇 제조 및 판매업’, ‘밥솥로봇 제조 및 판매업’을 신규 사업으로 추가한 바 있다. 당시 회사 측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중장기 전략 수립 차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관 개정 후 신규 사업을 모두 개시한 건 아니다. 쿠쿠홈시스는 2025년 사업보고서에서 서빙로봇 제조 및 판매업은 영위하고 있다면서도 밥솥로봇 제조 및 판매업에 대해선 ‘미영위’라고 기재했다. 서울 소재 한 경영대학원 원장은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나 조직 개편이 없다면 실제로 사업이 구체화하지 않을 수 있어 투자자들은 이를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