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시장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코스피는 사상 최초로 4920선을 돌파하며 ‘꿈의 5000’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반면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1400원을 훌쩍 넘어 1500원을 향해 치솟고 있다. 주가가 오르면 화폐 가치가 상승해 환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재 한국 시장에서는 주식과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20일 한국거래소와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2일부터 외국인의 폭발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13거래일 연속 상승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과거 유동성 장세에서도 보기 드문 기록으로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시장 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외환시장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싸늘하다. 원·달러 환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 상승세를 기록하며 원화 가치 급락을 방어하지 못하고 있다. 보통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면 원화 수요가 늘어 환율이 하락해야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서도 환율이 오르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복합적인 대내외 변수에서 찾고 있다. 우선 전 세계적인 ‘강달러’ 현상이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는 반면 고환율이 국내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을 뻥튀기하며 주가를 부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기업들이 고환율 효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코스피를 4900선 위로 밀어 올린 동력이 된 셈이다. 원화 약세가 국가 경제 전반에는 부담이지만,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를 차지하는 수출 기업에게는 호재로 작용하며 지수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는 해석이다.
과거와 달리 외국인 투자자들의 환헤지 전략이 고도화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은 매수하고 있지만 원화를 매도하거나 달러 강세에 베팅하는 포지션을 동시에 취하면서 주가 상승과 환율 상승이 공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 서학개미들이 해외 투자를 위해 달러를 지속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수급 불균형 역시 환율을 밀어 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처럼 주가와 환율이 동반 상승한 사례는 대표적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회복기가 꼽힌다. 당시 환율이 1200~1300원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 기대감과 기업 실적 개선이 맞물리며 코스피가 강하게 반등한 바 있다. 또한 2005년에도 미국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였으나, 국내 경기가 호황을 누리며 주가와 환율이 나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처럼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환율마저 위기 수준인 1500원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탈동조화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불편한 동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고환율이 당장은 수출 기업의 실적을 지지해주고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내수 경기를 침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 주식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코스피 5000 안착과 환율 1500원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통화·금융 정책의 조율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