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안전”...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전략 재정비 수순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개발자 콘퍼런스 ‘플레오스(Pleos) 25’에서 참관객들이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의 주요 제어기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Software-defined Vehicle) 전략을 재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율주행 기능 확대를 서두르지 않는 대신 내년부터 본격화할 SDV 전환을 기반으로 인포테인먼트와 차량 운영체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등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경기 용인시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아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기술 도입 속도가 경쟁 업체에 비해 늦다는 점을 인정했다. 정의선 회장은 “저희(현대차)가 좀 늦은 편이 있고, 중국 업체나 테슬라가 잘하고 있기 때문에 격차는 조금 있을 수 있다”면서도 “격차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기 때문에 안전에 좀 더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5일 경기 용인시 기아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아 80주년 기념 행사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정 회장의 발언은 SDV 개발 체계 전반을 재점검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현대차그룹은 그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사이 테슬라의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과 제너럴모터스(GM) 슈퍼 크루즈 등 상업화 속도가 빨라지고,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전통 완성차 제조사들도 해외 시장에서 레벨3(조건부 자율주행)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완성차에 탑재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전략 조정 필요성이 커졌다. 

 

 특히 테슬라의 감독형 FSD 한국 출시가 결정적 변곡점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테슬라는 최근 미국, 캐나다, 호주 등 6개국에 이어 7번째로 한국에 FSD를 정식 출시했다. 감독형 FSD는 차량이 스스로 가속, 제동, 핸들링 결정을 내리며 자율주행을 하지만, 운전자는 지속해서 전방을 주시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 국내 도입 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술력 논란에도 FSD가 실제 국내에 들어오면서 현대차로서는 기존 전략을 유지할지 새 판을 짤지를 결정해야 하는 압박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송창현 전 AVP본부장(사장)의 사임도 변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최근 그는 AVP본부장과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 포티투닷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송 전 사장은 SDV 개발 총책임자로서 대규모 조직을 이끌었으나 외부에서 체감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 전 사장 사의를 계기로 현대차그룹의 SDV 전략은 재정비에 들어갈 전망이다. 자율주행 기능 확대를 무리하게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26년 ‘플레오스 커넥트’가 적용된 첫 SDV 차량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제품 전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최근 “아직 일반적인 FSD와 상용화에는 거리가 있지만 기술을 확보하고 내재화하는 것은 저희의 트랙대로 가야 한다”며 그룹의 자율주행차 방향성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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