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인구구조의 변곡점에 서 있다. 부부가 아이를 낳아도 1명을 채 낳지 않는 0.7명대인 출산율과 함께 빠르게 증가하는 고령 인구로 ‘인구절벽’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닌 현실이 됐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가운데 국가의 성장 잠재력은 위축되고, 연금·의료·돌봄·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연령대별 맞춤형 지원과 지역우대 재정을 통해 인구구조 변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면서 인구구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10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올해 들어서는 반등 조짐이 일부 나타났다.
올 1분기 신생아 수는 6만502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하지만 인구 유지에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출산율 최하위 수준도 여전하다. 국가데이터청은 2070년에는 인구가 3600만명대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올해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이는 일본(1994년), 독일(2009년)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이처럼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 위기는 성장 둔화와 복지 재정 악화, 노동시장 불균형 등 ‘3중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2026년 예산안을 통해 출산·양육 지원과 일·가정 양립 정책 강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아동수당 지급연령을 만 7세에서 8세로 확대했고 아이돌봄 서비스 대상 중위소득 범위를 200% → 250%로 확대하고, 돌봄시간 확대 등의 조치도 포함됐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급여 상한을 기존 22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상향했다.
한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육아휴직으로 인한 인력 공백을 부담 없이 메울 수 있도록 대체인력 지원금 상한액을 최대 월 140만원으로 늘렸다.
만 12세 자녀를 돌보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경우, 단축된 근로시간에 비례해 근로자에게 주는 급여 상한액도 10만~30만원 인상했다.
근로자가 육아 사유로 1일 1시간 근로시간을 단축해 임금삭감 없이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육아기 10시 출근제’도 도입된다. 이 밖에 산업단지나 테크노파크 등에 소재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일·생활 균형 네트워크’ 제도를 신설해 정부의 정보제공, 상담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양성일 분당서울대학교 병원 정책연구기획센터(전 보건복지부 1차관)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돈을 얼마나 지원하느냐가 아니라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인구정책의 전환 방향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양 교수는 “돌봄과 육아 부담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구조를 바꾸고, 남성 육아휴직 사용의 실질적 보장과 기업이 겪는 인력 공백을 정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주거·교육·일자리 정책을 인구정책의 중심축으로 재편하고 정부 부처별로 흩어진 대응을 조정할 국가 차원의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령화 대응책도 강화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을 전국 본사업으로 전환하고, 노인 일자리를 기존 110만 개에서 115만 개로 확대한다.
고령자통합장려금(월 30만원 수준)을 신설해 노년층의 사회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공공 돌봄 인프라 확충과 재택·방문 돌봄 지원 확대도 추진된다.
2026 예산안에서 인구구조 대응 예산은 62조6000억원에서 70조4000억원으로 12% 이상 증가했다. 이는 정부의 인구구조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재정 확대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양 교수는 “출산율 제고와 고령화 대응은 단순한 복지 확충이 아니라 일자리·교육·주거·노동시장 전반의 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거 안정, 불안정 노동자의 육아·돌봄권 보장, 사교육비 완화를 통한 교육 개혁 등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인구절벽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가 성인이 될 즈음에는, 대한민국의 절반이 60세 이상일지도 모른다. 결국 해법은 ‘얼마나 돈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단기적 출산 장려금을 넘어, 주거·교육·노동·돌봄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