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하면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어. 근데 또 내 자식들 생각하면 강요할 수가 없더라고.”
잘 정리된 선산 가족묘를 바라보던 60대 최 모씨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서울에 사는 최 씨는 가족묘를 관리하기 위해 일주일이 넘게 선산이 있는 전라북도 익산에 머물고 있다. 한달 전에도 찾은 곳이지만, 여름철을 앞두고 전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시간을 냈다.
최 씨는 “금세 자라나는 잡초에 조금만 신경을 소홀히 하면 잡풀이 무성해진다”라며 “조상을 모신다는 생각으로 제초부터 벌초, 형태까지 잡아 관리하려면 1년에 10번 이상은 와서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름이면 태풍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날 수 있어 더 자주 관리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힘에 부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자식된 도리로 어떻게 소홀할 수 있가 있겠나. 힘들어도 이렇게 잘 관리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면서도 “그런데 또 내 자식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뀐다. 젊은 세대에게 선산을 관리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된 것 같다. 현재는 관리되지 않은 버려진 묘를 보는 것도 너무 흔한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예정인 우리나라는 저출생까지 겹치면서 역피라미드 인구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도에는 44.9세였던 중위연령은 2031년에는 50세를 넘어, 2072년엔 63.4세까지 크게 높아지며 인구 절반 이상이 환갑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층을 위해 젊은층이 부담을 나눠져야 하는 구조가 심화되는 가운데 오랜 세월 유지된 장묘 문화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미 무연고 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실에, 멀지 않은 미래에는 가계 내 분묘 관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기획을 위해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만난 최 씨는 20여년 전부터 선산 관리를 도맡맡아 해오고 있다. 강산도 두 번이나 변했을 시간이다. 그만큼 달라진 풍경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벌초 시즌만 되면 이상하게 마음이 횡해진다. 이전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관리를 위해 산을 오르는 고향 주민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안부를 물었는데, 최근들어 부쩍 그들의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최 씨는 “전에는 벌초 시즌만 되면 교통체증도 심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묘소를 오갔다. 우리 선산 근처에도 벌초를 하러 오는 이웃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면서도 “이제는 직접 관리하기가 힘들고 까다롭다 보니, 전문 업체에게 돈을 내고 관리를 맡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오랜기간 동안 연고자 없이 방치돼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없는 묘를 ‘무연분묘’라 부른다. 최씨가 관리하기 시작한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연분묘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관리를 위해 산을 오르는 와중에도 무연분묘는 흔하게 마주할 수 있었고, 묘가 아닌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묘였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최씨는 “요즘은 무성한 풀 사이에 있는 관리 안 된 묘부터 시작해서 묘 위로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며 “나무가 너무 자라 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 관리가 되지 않은 곳도 있다. 그대로 한 1년만 지나면 그 묘는 더이상 묘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최근들어 고민이 깊다. 최 씨는 “대개 선산을 돌보는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사람들인데, 주도적으로 관리하던 어른들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들, 손자들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시대가 바뀌었고, 조상을 모시는 방법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선산, 묘 관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돼 버렸다”고 전했다.
이처럼 장묘 문화의 현주소와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는 최씨는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지우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한다. 본인 세대에서는 당연했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일 수 있고, 무엇보다 그 힘듦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걱정이 드는 것이다.
묘비석을 정성스레 닦으며 생각에 잠긴 최씨는 “현재는 이렇게 직접 관리하고 있지만, 다음 세대에게까지 선산을 관리하라고 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리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으니 가족 산소를 개장해 화장한 후 가족 납골묘에 모시거나 공원묘지에 의탁하는 것도 고민해봤다. 공원묘지는 30년 정도 조상을 모실 수 있고 이후에 연장하거나, 부담되는 분들은 없애기도 한다고 알고 있다. 이미 그렇게 많이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시대가 변했고, 조상을 추모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마냥 섭섭해할 수만은 없다. 그것이 현실아니겠나. 아마 당분간 계속 고민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결정해야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최서진 기자 west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