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강소 기업을 가다] 구글·MS와 어깨 나란히…시각보조 앱 ‘설리번’ 개발사 투아트

 고금리·고물가·고환율까지 삼중고로 국내 산업계가 도전에 직면했다. 내수·수출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벤처투자시장의 자금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유례없는 위기에 주눅 들기는커녕 뚝심 있게 기술을 혁신하며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비즈가 빛나는 아이디어로 주목받는 알짜배기 기업들을 만나본다.

 

조수원 투아트 대표. 투아트 제공

 대구의 작은 소프트웨어 외주 개발사가 이동통신계의 오스카로 여겨지는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GLOMO)’에서 두 차례나 수상해 국내 관련 산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 주인공은 인공지능(AI) 기반 시각장애인 보조 앱 ‘설리번 플러스’를 개발한 투아트(Tuat)다.

 

 2020년말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스타트업’을 유심히 본 시청자라면 이 앱이 낯익을 수 있다. 극중 배수지가 근무하는 스타트업 삼산텍이 개발한 시각보조 앱 ‘눈길’의 모델이 바로 설리번 플러스이기 때문이다.

 

 조수원 투아트 대표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농대 출신으로 회계 관련 일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유망한 개발자들을 모아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설립했다. 우리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갑작스럽게 시각장애를 얻게 된 지인의 이야기를 접했다. ‘시각장애인을 도와줄 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내 최초 시각 보조 AI 서비스인 설리번 플러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조수원 대표는 “이미 시장에 있는 서비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MS) 외에는 유의미한 사례가 없었고 그나마도 국내에선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며 “한국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앱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고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업무 회의 중인 조수원 대표의 모습. 투아트 제공

◆GLOMO가 인정한 아이디어 

 

 설리번 플러스는 2018년 7월 안드로이드 앱 마켓에 데뷔했다. 앱 개발에는 시쳇말로 도가 튼 회사다 보니 앱을 내놓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접근성이었다. 조 대표는 “뭘 모르던 시절에는 앱의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려면 접근성이 제일 중요하더라”고 돌아봤다. 실제로 설리번 플러스는 첫 출시 후 1년 동안 사용자환경(UI)을 3번이나 갈아엎었다.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를 넓히면서 편의성을 개선해왔다. 아이폰(iOS) 버전은 2019년 10월에 나왔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서비스도 시작됐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여러 기업의 러브콜로 이어졌다. 앱을 처음 출시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LG유플러스가 외주를 요청해왔다. 여러 논의 끝에 사업 제휴가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LG유플러스가 설리번 플러스에 접근성 개선을 지원했다. 2019년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기념해 이 소식이 전해졌고 설리번 플러스는 단숨에 유명세를 탔다.

 

 꾸준히 유망 벤처·스타트업을 발굴해온 SK텔레콤에도 눈도장을 찍었다. 두 회사는 2021년 말 협업을 시작해 내친김에 ‘MWC 2022’까지 도전했다. MWC는 매년 2월 열리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로 세계적 권위의 GLOMO 수상작을 선정해 발표한다. 조 대표는 “당시만 해도 설리번 플러스에는 음성 AI가 적용되지 않았다”며 “실제 사람의 목소리를 따서 AI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SKT의 음성 인식 AI ‘누구(NUGU)’를 더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설리번 플러스는 GLOMO 2022에서 ‘접근성·포용성을 위한 최고의 모바일 사용 사례’ 부문 수상을 거머쥐었다. ‘장애인이 겪는 허들을 낮춘 긍정적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양사는 이후 SKT의 ‘에이닷 멀티모달(A.X Multimodal)’를 적용한 ‘설리번 파인더’를 함께 개발했고 이를 GLOMO 2024에 또 출품하게 됐다. 뭣 모르고 도전했던 2022년과 비교해 중압감이 컸다. 특히나 올해는 중국 기업들의 공세가 매서웠다. 조 대표는 “설리번 플러스는 수 년간 이어온 서비스로 글로벌에서 사용하고 있었고, 별점과 리뷰도 많았지만 설리번 파인더는 마켓에 이제 막 베타 버전이 올라간 상태였다”며 “경쟁 상대가 쟁쟁해 긴장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GLOMO는 서비스의 본질을 인정했고 2022년과 같은 분야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금도 SKT와의 동행은 이어지고 있다. 투아트는 SKT가 이끄는 K-AI 얼라이언스 참가사다.

 

 조 대표는 “현재 시각장애인 보조 서비스 분야에서는 3가지 축이 있는데 MS의 Seeing AI, 구글의 룩아웃, 그리고 설리번 플러스”라고 설명했다. 작은 스타트업이지만 구글, MS 같은 빅테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셈이다. 설리번 플러스의 다운로드 수는 약 30만이며 해외에서만 25만명이 사용하고 있다.

 

‘설리번 플러스’의 주역인 조수원 투아트 대표(가운데)와 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아트 제공

◆설리번 플러스의 일상 활용

 

 투아트의 설리번 시리즈는 설리번 플러스로 시작해 설리번A, 설리번 파인더까지 총 3종이다. 설리번A는 문서 특화 서비스로 3종 중 유일하게 유료다. 설리번A로 문서를 찍으면 긴 내용을 3~4줄로 요약해준다. 시각장애인의 업무와 학업을 돕는 용도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설리번 플러스다.

 

 조 대표는 “보행을 하며 스마트폰으로 설리번 플러스를 실행하면 눈앞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접 설리번 플러스 앱을 실행해 노력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기자와 조 대표는 카페에서 만났는데, 눈앞의 모습을 찍자 “스타벅스 머그잔이 2개 놓여 있어요. 뒤로는 검은색 남방을 입은 남자가 서 있어요”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AI 성능이 개선되면서 앱을 계속 사진을 찍어보며 재미를 붙인 사용자도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음식 사진을 찍으면 이것이 어떤 음식이고 어떤 재료가 보이는지 묘사한다. 편의점 도시락이라면 어떤 반찬이 들어있는지 말해준다. 가게 메뉴판도 읽어준다. 안드로이드 버전에는 ‘라면 찾기’ 기능이 있는데 화면에 비추기만 하면 앞에 있는 라면이 어느 라면이고 어떤 크기인지 묘사해준다.

 

 조 대표는 설리번 플러스로 읽을 수 있는 제품군의 범위를 넓히고 싶었다. 그래서 최근 생리대, 기저귀 등을 제조하는 유한킴벌리에 라면 찾기 같은 기능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조 대표는 “AI에 유한킴벌리 제품 종류를 학습시켜서 묘사해주는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궁금한 점이 생겼다. 주요 모델인 설리번 플러스가 무료로 운영 중이라면 수익은 어떻게 창출하는 것일까. 조 대표는 “사실 지금도 앱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며 “올해는 설리번 서비스를 담은 하드웨어가 출시돼 수익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웃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