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談談한 만남]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상속 분쟁 막으려면 유언대용신탁 필수”

유언대용신탁, 객관적 상속 집행·세대 연속 상속도 가능
기업승계 때 재산관리의 안전장치 마련 가능
"광고 규제 완화·과감한 세제 혜택으로 신탁 활성화 유도해야"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이 유언대용신탁의 장점을 소개하고 있다. 김두홍 기자

 

 “상속 문제를 자녀들에게 맡겨놓고 세상을 떠난다는 건 ‘내 자녀들은 앞으로 싸워도 된다’는 얘기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형제자매라도 돈 문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유언대용신탁은 가족 간 상속 분쟁을 줄일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확신합니다.”

 

박현정(52)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가파른 고령화 속도, 가구 형태의 다변화 등 시대의 변화상을 고려하면 신탁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국내 신탁 분야에서 자타공인의 최고 전문가다. 1993년 은행에 입행해 10년가량 프라이빗뱅커(PB) 생활을 거쳐 2017년 1월 리빙트러스트센터에 합류했다. 지난해 1월엔 센터장으로 부임해 하나은행 내 신탁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현재 세무요원, 법률지원 변호사, 부동산 전문가 등 리빙트러스트센터 내 22명의 전문가와 함께 손님들의 증여 및 상속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뛰고 있다.

 

◆“유언대용신탁, 별도 유언장 불필요…집행의 객관성도 장점”

 

신탁 제도는 재산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사안을 비교적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박 센터장은 “기대수명 증가로 치매 등 노후 질병이 늘어난 데다, 상속자의 잔여재산에 대한 이슈가 커지면서 증여, 상속 및 유산정리 등의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면서 “상속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간 이견이 없을 순 없겠지만, 신탁 제도를 활용하면 집행의 객관성 측면에서 재산이전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에 견줘 장점이 크다는 게 박 센터장의 설명이다. 민법에 기초한 유언장은 엄격한 형식주의를 취한다. 여러 개의 유언장을 작성했더라도 마지막의 것만 유효하다. 또 최초 상속인 지정만 가능하다는 점도 한계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인 피상속인과 수탁자인 금융회사간 계약이 이뤄지는 형태다. 별도의 유언장 없이 계약에 따라 상속 배분 기능을 수행한다. 피상속인의 생전에도 재산관리가 가능하고, 계약을 통해 상속인, 지급시기, 상속 비율 등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일례로 위탁자가 ‘내가 치매에 걸리게 되면 신탁 재산을 병 간호에 사용하고, 사후엔 남은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에게 특정 비율로 상속하라’는 식의 구체적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센터장은 자신이 접했던 상속 사례를 언급하며 “한 위탁인은 ‘상속인으로 설정한 자녀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주되, 자신이 기르던 애완동물과 가장 친했던 손녀에게 작은 상가를 신탁에 맡겨 여기서 나오는 월세를 손녀 앞으로 지급하라’는 구체적 내용을 내걸었다”면서 “유언대용신탁은 증여, 상속에 대한 세부 내용을 명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대, 3대에 걸친 ‘세대 연속 상속’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시기 때 피상속인의 의사능력 유무를 따질 필요도 없다. 애초에 은행은 정상적인 의사결정 상태인 이들과 신탁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이 신체 및 정신 건강이 온전할 때 신탁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신탁 계약의 객관적인 집행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그는 “특히 유언장에 따른 상속 시 수증자가 집행인인 경우 유언장 집행에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 사망 시 금융회사가 집행인이 된다. 금융회사로선 계약 관계에 따라 객관적으로 일처리를 한다는 점에서 집행 과정의 어려움이 없다”고 부연했다.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이 센터 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두홍 기자

 

◆“가구 형태 다변화·글로벌화…기업승계 과정에서도 신탁 필수”

 

최근 신탁시장을 이해하려면 가구 형태의 다변화 및 글로벌화 흐름을 파악하는 게 좋다. 박 센터장은 “이혼, 사별, 재혼뿐만 아니라, 재혼은 했더라도 법적 재혼은 하지 않는 경우 등 다양한 가구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면서 식구들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전했다.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난 부모를 가정해보자. 부모가 소유했던 15억원짜리 주택을 국내에 거주하는 장남과 해외에 거주하는 차녀에게 절반씩 물려줄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해외에 거주하는 차녀가 상속을 받은 후 해외로 돌아가 연락이 두절되면, 상속세는 오롯이 국내 거주하는 장남의 부담이 된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가구 형태가 이미 글로벌화된 상태에선 상속 관계가 복잡해지거나 상속을 둔 가족 간 불화가 커지기 마련인데, 신탁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게 박 센터장의 설명이다.

 

기업승계 과정에서도 신탁의 활용도는 높다. 개인의 재산을 신탁으로 관리하다가 상속 또는 증여하는 것처럼 주식, 부동산 등 법인의 재산을 증여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해 후계자에게 넘길 수 있다. 박 센터장은 “자녀가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법인의 지분을 부모의 의사에 반해 처분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신탁 계약 체결을 통해 자녀의 신탁해지 및 재산권 행사 때 부모의 동의를 받게 함으로써 재산관리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광고 규제 완화·세제 혜택 제공 시 신탁 활성화 도움”

 

신탁 제도 활성화를 위한 걸림돌이 없는 건 아니다. 박 센터장은 신탁 상품에 대한 광고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배우 박인환 씨가 출연한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광고는 상품에 대한 구체적 소개나 설명이 없다. 사실상 이미지 광고다. 박 센터장은 “유언대용신탁 분야에서 비중이 높은 부동산 관리형 신탁은 투자상품이 아닌데, 이를 홍보하는 것까지 투자상품으로 간주하는 건 지나친 제약”이라면서 “보다 많은 금융소비자들이 유언대용신탁과 같은 재산관리 방법을 인지할 수 있도록 현재의 까다로운 광고 기준은 완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로비의 유언대용신탁 홍보물. 사진=오현승 기자

 

그는 과감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신탁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금수저 대물림’ 논란만 의식해서는 신탁업의 발전이 더뎌질뿐만 아니라, 자산가들의 돈이 묶여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는 부정적 효과만 발생할 거라는 게 박 센터장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 전 연령층 중 60대 이상의 재산보유비율이 가장 높은데, 이들이 초고령층이 되기 전 신탁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신탁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세제 혜택 제공은 ‘꼼수 증여’ 유인을 낮추고, 사회적으로 증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찌감치 신탁업이 발달한 일본에선 ‘결혼양육지원신탁’, ‘교육자금증여신탁’에 한해선 한화로 약 1억~1억5000만원 수준까지는 비과세가 적용된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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