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上)] 팔짱 낀 금융당국

카드사 "동일 서비스·규제"… 빅테크 "이해의 문제"
금감원, 원론적인 입장 뿐… 능동적인 조율 나서야

금융권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 금융사와 빅테크 및 핀테크 업체 간 형평성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간편결제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지만 공정경쟁을 유도할 법 개정 등 후속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서 되레 시장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연합뉴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공동체 인식 보다는 무엇이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가에 대한 판단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윤리가 없어지고,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며, 진정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권 내부에서 디지털혁신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기존 금융사와 빅테크, 핀테크 업계도 급변하는 흐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소비자의 이익과 권리는 뒷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롭게 형성된 시장에서 금융소비자보호라는 큰 흐름은 무시한채 각자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도 심판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편집자주>

 

사진=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권영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비대면’이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전 산업 분야의 디지털화가 두드러졌고, 특히 금융권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네이버, 카카오 등 초대형 플랫폼을 가진 IT 기업이 금융권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금융권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서 금융당국은 ‘디지털금융 혁신 방안’을 내놓으며 금융권 4차 산업혁명으로 향하는 길목을 넓히고 있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금융권의 디지털화는 반갑다. 굳이 은행지점이나 ATM기를 찾지 않더라도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송금 및 이체가 가능하고, 쇼핑 역시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또한 주식투자, 대출 등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어디서든 가능하다.

 

◆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후속 조치 미흡

 

다만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숙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시스템 변화에 따라 전자금융산업의 규제수준과 체계를 개선하고 조율해야 한다. 금융보안에 대한 강화는 물론 제도 및 금융 관련 법 개정도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특히 기존 금융사와 빅테크 및 핀테크 등 금융권에 진입한 업체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이를 위해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민·관, 전문가, 업계대표 등을 모두 포함한 ‘디지털금융 협의회’를 출범해 현재까지 3차례 논의를 진행하는 등 금융권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다만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여전히 물음표가 달려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간편결제 시장의 ‘규제 형평성’이다. 카드업계의 경우 가맹점 수수료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진입한 빅테크 및 핀테크의 경우 이 규제에 적용받지 않는다. 카드사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을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간편결제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의 경우 “가맹점 수수료 가운데 카드사에 지급하는 비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간편결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오해”라는 입장이다. 이뿐만 아니라 카드사의 경우 서비스 상품 3년 유지 의무 규정을 적용받고 있지만, 빅테크는 예외다. 이처럼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다.

◆ 합리적인 규제로 공정경쟁 유도해야 시장 성숙

 

그래서 금융당국의 기민한 대응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형평성과 규제차익에 대한 부분을 지적받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은 느긋한 분위기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디지털금융협의회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내년 3월까지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시간을 두고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근 제3차 디지털금융협의회를 진행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금융회사와 핀테크 부문간 상호 호혜적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원론적인 내용을 밝혔을 뿐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논의 과정이나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서는 추가 설명이 없었다.

 

물론 신중한 접근도 필요하지만 자칫 시장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이미 네이버 및 카카오페이는 간편결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실물카드(신용 및 체크) 사용 빈도가 줄어드는 반면 빅테크 플랫폼 이용자는 급증하고 있다. 카드업계는 이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KB국민카드가 ‘KB페이’를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네이버·카카오페이와 대적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금융당국이 최근 불거진 옵티머스 사태는 물론 금융사 종합 검사 등으로 분주하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권의 디지털화에 따른 제도 및 규제 개선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디지털금융 혁신 바람에 휘둘려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young070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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