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그룹지주사로 재탄생…'이재용 후계' 완성

엘리엇과 합병전쟁 완승…찬성률 예상外 높은 69.5%
엘리엇 주주제안 2건 모두 부결…경영권 승계 가속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물산이 17일 각각 주주총회를 열고 양사간 합병을 승인했다.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제일모직 본사 앞에 태극기와 삼성사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남정탁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안건이 양사 주주총회를 모두 통과하면서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삼성그룹 후계구도가 완성되면서 이 부회장은 새롭게 태어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서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를 포함한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됐다.

삼성물산은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제1호 의안인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을 찬성률 69.53%로 가결했다.

주총 의장인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오후 12시47분경 “1억3235만5800주가 투표에 참여해 이중 총 9202만3660주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날 주총에서 위임장을 제출하거나 현장 표결로 의결권을 행사한 주식의 참석률은 83.57%로 집계됐다. 전체 주식 총수(1억5621만7764주)에 대비한 합병 찬성률은 58.91%다.

삼성물산은 표결에서 특수관계인·계열사(13.92%), KCC(5.96%), 국민연금(11.21%), 국민연금 외 국내기관(11.05%) 대다수 등 42%대의 안정적 지지표 외에 소액주주와 외국인으로부터도 16%대의 높은 지지를 확보했다. 애초 박빙 승부를 내다봤던 시장 예측을 깨고 결과는 삼성의 ‘압승’이다.

확실한 반대표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7.12%를 비롯해 메이슨캐피탈(2.18%)을 포함한 외국인 및 소액주주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총 주식수 대비 반대표는 25.82%다.

삼성은 지난 5월26일 양사 합병 발표 이후 53일 만?엘리엇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합병전쟁에서 완승을 거뒀다. 엘리엇의 합병 저지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 통합 삼성물산, 확실한 우군 ‘37.8%’ 확보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에서 16.5%의 지분으로 삼성물산 최대주주로 등극함에 따라 추가로 지분을 매입하지 않아도 그룹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를 통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도 통합 법인에서 각각 5.5%씩의 지분을 갖게 되면서 이건희 회장의 지분 2.9%를 포함해 오너 일가의 삼성물산 총 지분율은 30.4%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계열사인 삼성SDI(4.8%)와 삼성전기(2.6%) 지분을 전부 합치면 우호지분율은 37.8%로 더욱 높아진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성사에 전사적인 총력을 기울인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그동안 수차례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30개가 넘는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었는데, 이번 주총 합병승인을 통해 삼성물산이 생명과 전자를 지배하는 단순 구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당장 공식적인 ‘회장’ 자리에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룹에서는 이미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사실상 공식화한 분위기다.

엘리엇이 주주제안한 제2호 의안인 현물배당안은 부결됐으며, 엘리엇의 주주제안 제3호 의안인 중간배당안도 45.82%의 찬성률로 역시 부결됐다. 앞서 제일모직은 같은 날 오전 9시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삼성생명빌딩 1층 컨퍼런스홀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삼성물산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삼성물산 최치훈·김신 사장과 제일모직 윤주화·김봉영 사장은 최고경영자(CEO) 공동메시지를 통해 “그동안 성원과 지지를 보내준 주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번 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됐다”며 “양사 사업적 역량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가치를 높여 기대에 보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 열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승인을 위한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장 내부 모습. 사진=삼성물산
◆ 순환출자 고리 단순화…‘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예정대로 9월1일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법인이 출범하게 되면서 순환출자 고리가 단순화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내 입지를 강화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현재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 형태로 이뤄져 있다.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의 지분 19.3%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다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1%를 들고 있는 구조이다. 따라서 이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으로 ‘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지배구조가 단순화한다.

합병 후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바뀌는 셈이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De Facto Holding Company)로서 위상을 갖춰 미래 신수종 사업을 주도하고 그룹 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순환출자 구조가 단순화된다면 굳?지분 늘리기에 목을 맬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삼성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경영권 승계에 나설 것으로 보는 일각의 관측 또한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엘리엇은 이날 주총 폐회직후 입장 자료를 통해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져 실망스러우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엘리엇은 향후 합병 무효 청구소송을 내거나 통합 삼성물산의 주주로서 삼성을 상대로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의 지분(7.12%)은 1대0.35 비율로 계산하면 통합법인에서는 2.03%로 줄어든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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